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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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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1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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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천을 지나 안양천으로 접어든다.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애초 빠르게 걷는 속도여서 달린다는 표현이 무색했지만 지금은 그 보다도 더 떨어졌다.

걸어가는 사람과 보조가 비슷해서 조금 속도를 냈다. 좁은 길을 다른 사람과 나란히 달리는 것은 보기에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

걷는 사람에게 빨리 가라고 재촉 할 수 없으니 조금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속도가 조금 높아지자 호흡이 가빠왔다. 저녁에도 30도가 넘었다. 더운 날씨 탓을 할 만했다.

하지만 휙,휙 옆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정해 놓은 목표지점 까지는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면 멀리 고층빌딩 사이로 저기까지가 반환점이라고 알려 준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누가 뭐라 해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버 페이스를 하면 뒷감당이 어렵다. 한 발 한 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디딘다. 운동화의 앞면이 발 뒤굼치 보다 먼저 닫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릎관절이 몸무게의 하중을 덜 받게 된다고 했다. 전에는 무시했던 것을 요즈음은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인다. 달리면서 까지 발가락 쪽인지 뒤굼치인지 따져야 하는지 전에는 정말로 꿈조차 꾸지 못했다.

이것도 나이 들어가면서부터 생긴 변화다. 받아들이는 것. 거부하지 않는 것은 편하기 때문이다. 밀어내고 떠밀다 보면 나 자신도 그렇게 된다. 그러니 순응할 수 밖에, 이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춤 추는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몸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대고 있다. 비스듬히 옆으로 맨 가방이 덜렁거리지 않도록 줄을 몸에 밀착한 것이 가슴을 도드라지게 했다.

근육 운동을 했는지 앞 근육이 춤출 때 마다 흔들린다. 오늘은 왠일인지 반바지 차림이다. 무릎아래의 힘줄이 도드라졌다.

정맥류가 틀림없었다. 정맥류가 저런 자세로 저렇게 오랫동안 구보를 해도 괜찮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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