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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는 홀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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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는 홀로 남겨졌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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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이 멈춘 자리에는 정적이 찾아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갠 날씨처럼 바로 전의 폭우를 사람들은 잊었다.

정적의 빈자리는 비명 소리가 다시 채웠다. 굉음과 정적과 짧은 순간 고요와 다시금 외침이 굴속을 지배했다.

발목을 잘린 병사는 바로 눈앞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 소처럼 심장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주사바늘을 마구 찔러 대도 별무 소득이었다. 의료용 마약의 효과도 진이 빠질 즈음 부조장은 더 이상 이런 상태로 후퇴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병사를 내려놓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빠져 나간 다음 의료진과 함께 바로 구하러 오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부조장의 말은 거의 진실이었다.

일그러운 동료의 얼굴과 피로 얼굴진 하체가 잠시 그의 얼굴에 스쳤다. 병사는 말 대신 참으려고 했으나 되지 않아 기어이 입 밖으로 나온 신음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조장은 시간의 지체 보다는 신음 소리가 더 신경을 거슬렸다. 총소리로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 됐지만 상당거리만큼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적들도 우리의 위치를 새로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부상병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부조장의 명령을 탓할 수는 없었다.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했다. 그 것이 전쟁터의 이치였고 순리였다.

그 곳에서 인간적 고뇌나 동지애를 부르짖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부상병은 동료 들이 떠난 직후 자신이 버려 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손에 쥔 남은 주사바늘을 상처 주변에 사정없이 찔러 박았다. 저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먹이를 노리는 악어 입이 벌어지듯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부상병은 벌린 입을 닫을 때 언제 벌어졌던 입인지 잠시 생각했다.

그 와중에 부상병은 자신의 입을 생각했다. 자신이 죽으면 입은 벌어질까, 아니면 닫혀 있을까. 그는 죽음과 입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소총의 총구를 목 주변에 대고 길게 몸을 옆으로 뉘었다.

다행히 총신은 짧아 다치지 않은 발가락을 빌리지 않아도 방아쇠를 손가락에 충분히 걸 수 있었다. 특수부대원으로 차출 된 병사들에게 지급된 자동소총이 이런 때는 도움을 주었다.

그가 막 자신의 목을 향해 방사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낯선 단어들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그의 귀에 뛰어 들어왔다. 적들이 내뱉는 빠르고 낮은 음성이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마주칠 만한 거리라는 것을 부상병은 직감했다. 그는 몸을 조금 세우고 총을 두 손으로 바로 잡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표적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향해 그는 총을 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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