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장은 8명을 한 개조로 총 3개 조를 구성했고 조의 장은 중위가 맡도록 했다. 이들을 총괄 지휘할 구대장은 대위로 1조의 장도 겸하도록 했다.
하지만 굴 속에서 각 조는 각자 생존의 위기에서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위임받았다. 긴급한 상황에서 구대장의 지시를 따를 수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만 조금의 여유라도 있다면 구대장 보다는 지상의 중사에게 조언을 구하도록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무전기 대신 유선 전화를 가지고 가도록 한 데서도 기인했다. 적에게 노출 위험이 있으면서 지상과 교신이 원할하지 못할 무전기는 작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으로 취급됐다.
유선전화는 방향을 찾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유사시 크레모아의 뇌관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특수 개조된 것이었다.
연대에서 뽑힌 12개 대대의 내노라 하는 특출한 병사들이 집합하는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별로 일렬 횡대로 집합한 그들의 얼굴은 생과사의 갈림길에 섰다는 생각에 굳은 표정이었고 흥분된 상태였다.
총신이 짧은 기관단총으로 어깨에 걸고 단독군장 차림을 한 그들은 곧 굴 속으로 투입됐다. 투입된 3개조는 큰 길에서 갈림길을 만나자 서로 갈라졌다.
갈라지면서 그들은 유선전화의 선을 길게 늘어 트려 자신들이 지나온 곳을 표시해 두었다. 투입조가 갈라질 무렵 연대장은 중사와 대원을 잡고 어떤 식으로 적을 공격해야 섬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말이 의견이지 일방적으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대원에게도 질문이 이어졌는데 연대장은 대원이 원하는 답변을 할 경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피워라.'
하지만 대원은 그것이 진짜 피우라는 말인지 의아했다. 연대장과 맞 담배질을 할 수는 없었다. 이곳이 비록 죽은 자들이 모인다는 지옥의 관문 이라할지라도 말똥 세 개와 전우애를 외치며 작대기 세개가 담배를 맞잡을 수는 없었다.
연대장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대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자신의 위치를 높이 보지 않았다.
별 정도는 달아야 위에 있다는 느낌이 현실감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푸른 견장 위에 별을 단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별을 달고 지휘봉을 들고 연대장의 조인트를 까면서 장군의 위엄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연대장은 자기가 보기에 지금의 자신이 달고 있는 계급은 높지 않았다. 그는 별을 달기 위해서는 중사와 대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간파했다.
굴 속에 들어간 병사들의 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들고 간 무기가 수류탄이나 크레모어, 혹은 화염방사기 같은 것이어서 이것은 적도 죽이지만 자칫 아군도 다칠 수 있는 무기들이었다.
애초 연대장은 적의 섬멸이 아군의 생존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인했다. 그의 부하들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서 그가 장군으로 진급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죽더라도 적이 더 많이 죽거나 은신처가 파괴되고 동태를 파학할 수 있다면 그것은 승진 조건으로 맞아 떨어졌다.
그는 통합작전사령부의 대장인 미군 소장에게 자신의 작전과 연대 병력이 굴 속으로 투입된 사실을 사후보고했다.
미군 소령은 처음에는 아군의 피해가 예상되는 무모한 작전이라고 추궁했으나 적의 대대병력을 섬멸할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라는 연대장의 말에 곧 수긍하면서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승진할 수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연대장의 얼굴에 미소가 잠깐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