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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82. 움직임에는 작은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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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움직임에는 작은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26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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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부대장이 중사 일행의 존재를 확인할 즈음 중사는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여러 날 날밤을 세웠기 때문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 정신 줄을 놓았지만 여기는 전쟁터이고 자신은 군인이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잡아채고 눈을 떴다.

대단한 정신력이 발휘된 것은 훈련의 덕분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의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자신이 대원 옆에서 잠든 것과 지금의 위치와 그 이전의 상황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그의 본능은 생존을 위한 그 이상의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것보다는 좀 더 숭고하고 넓고 깊은 그 무엇이 갑자가 자신의 내부에서 끊어 올랐다.

중사는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방아쇠에 손에 대고 가볍게 소총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대원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대원도 그 때는 이미 깨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임에는 작은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중사는 대원에게 즉시 이동해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몸을 세워서 벽을 타고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벽은 곧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었고 다시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또 다른 방향을 향해 휘어져 가고 있었다. 중사는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고 판단한 순간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무작정 앞으로 혹은 방향이 바뀌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원은 바짝 붙어 그 뒤를 따랐다. 중사를 놓치는 순간 자신의 목숨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하던 중사가 굽은 곳을 의지하더니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대원이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희미한 빛이 한 줄기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밧줄이 있는 동굴 입구까지 온 것이다. 대원은 살았다고 안도하는 그 순간에도 중사의 방향감각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보기에 아무 곳으로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중사는 생명의 위험이 있는 그 와중에도 정확히 탈출 위치를 파악하고 경로대로 이동했던 것이다.

중사는 빛을 따라 벽을 더듬없고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중간 중간 매듭이 있는 밧줄 이었고 그 매듭은 중사의 지시에 의해 대원 스스로가 맸던 것이었다.

자신이 만들었던 밧줄을 타고 대원을 밖으로 나왔다. 땅바닥에 쓰러지듯 몸을 올려 세워 놓는 순간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대원은 총을 잡았으나 곧 강렬한 빛에 순간 눈앞에 아득해 혼절했다.

뒤이어 중사가 따라 나온 것을 대원은 알아채지 못했다. 중사도 대원처럼 빛의 세례에 약간 움찔 했으나 쓰러져서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대원 하나를 잃었지만 생존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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