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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내버려 둬도 가는 길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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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내버려 둬도 가는 길을 알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23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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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한 늪을 지날 때는 언제나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였다. 비스듬히 기운 해는 늪에 반사돼 원래보다 더 붉은 빛으로 빛났는데 그 빛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 물소는 한 없이 기뻤다.

힘겹게 물속을 걷다가 마른 땅을 디디면 좋아서 죽을 지경이라는 듯이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그러다가 겅중겅중 걸으면서 꼬리를 치고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기도 했다.

내버려 둬도 물소는 가는 길을 알았다. 한 번은 줄을 놓고 그 뒤를 따라 가기만 했는데도 물소는 소로를 몇 번 바꾸더니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단번에 언덕에 있는 자기의 마구간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물소는 그 때부터 자신의 물소가 정말 똑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 더 물소를 아끼게 된 그는 아무리 살림이 나빠도 죽을 때 까지 녀석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빨이 빠진 늙은 어미는 물소와 아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네 아비고 그랬다고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중얼 거리곤 했다. 지금 그는 고향에 있는 물소가 그리웠다. 솔직히 어머니를 보는 것보다 물소가 더 먼저 보고 싶었다.

당장 녀석을 끌고 늪 속으로 들어가 온 종일 휘휘 젖다가 젖은 물을 털고 좁은 길로 녀석을 앞세우고 돌아오고 싶었다.

빛이 사그라질 때면 늙은 어미는 토방에 나와 돌아오는 아들과 물소를 보고 이 빠진 턱을 벌려 환하게 웃을 것이다.

그리고 씻기도 전에 여물부터 챙겨주고 나오는 아들을 위해 불어터진 국수를 한 번 더 데워놓고 어 여 먹으라고 재촉해 댈 것이다. 물소 별명의 병사는 뒤따르다가 이런 환영에 빠져 들곤 했다.

어떤 때는 실제로 자기 앞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일행과 멀어지기도 했다. 물소는 이번에도 고향을 다녀왔다.

비록 상상 속에서였지만 고향은 3년 전 모습 그대로 거기에 서 있었다. 늙은 어미는 여전히 토방에 나와 곰방대를 물고 있고 물소는 여물통을 핥으면서 자신이 오는지 고개를 빼고 밖을 쳐다봤다.

첨병이 적진을 살피기 위해 부대장과 둘이 남아 있는 동안에 그런 생각에 빠졌던 물소는 첨병이 돌아오자 다시 제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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