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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예스를 원했으나 아니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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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예스를 원했으나 아니라고 대답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03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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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죽이는 것과 동료를 죽이는 것은 달랐다.

전쟁에서 교전 중에 적을 죽이는 것은 정당 방위였다. 국가로부터 살인면허를 공식적으로 받은 것이니 면허 소지자가 면허의 범위 내에서 하는 행동은 당당할 수 있다.

중사는 지금껏 그런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고 행동했다. 하지만 동료를 죽이는 것은 달랐다. 비록 선공에 대한 예방적 차원이라고 해도 양심의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숨소리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대원이 그러리라고는 의심일 뿐이지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이럴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 되고 만다.

물어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행위 자체가 지체할 수 없는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사가 의심한다고 생각한 대원이 바로 사격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사는 고민했다. 경험 많은 그도 이 순간만큼은 조금 떨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착검 시 나게 될 딸깍 하는 소리였다. 이런 말을 끄집어 낼 때 중사의 목소리는 조금 흔들렸다.

대원은 중사가 자신의 계획을 눈 치 챈 것은 아닌지 떨리는 목소리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팔뚝에 솟는 소름을 의식했다. 딸깍 하는 소리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다.

아무리 어둠 속이라 하더라도 대검 집에서 대검을 꺼내 총구 언저리에 있는 걸쇠에 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소리 없이도 제대로 걸 수 있는 것은 훈련병이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중사가 소리를 걱정했다. 그 것은 그럴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대원의 계획을 알아 차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몇 초 후 중사는 돌아갈까 하고 대원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돌아갈까 보다 너 죽어볼까 하는 소리를 가까스로 죽이고 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중사는 대원의 속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 사살을 통해 아직 살아 있는 적의 기습을 막아 보려는 행동이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양심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전투력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적 진 깊숙한 곳에서 동료를 살해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힘을 합쳐도 부족한데 전투력을 고갈 시키는 짓은 피해야 할 전투 교범이었다.

중사는 몇 초간 망설였다. 그가 예, 라고 얼른 대답하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은 대원이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원은 중사가 기대하던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닙니다. 잔당을 소탕하고 가야합니다.’ 대원은 충분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중사는 확신했다.

그가 전진을 말한 것은 살기 위한 행동이었다. 대원은 중사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스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았다.

대원은 영리했고 중사는 그것을 간파했다. 중사는 총구로 대원의 가슴을 푹 한 번 찌르고 고맙다고, 너를 믿는다고 중얼 거렸다. 그럼 착검하자, 중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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