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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01:19 (금)
65. 동의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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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동의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02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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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는 대원의 마음을 알았다. 대원은 중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의 차이점은 간단했으나 그것은 생사를 가를 만큼 중요했다.

대원은 중사가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므로 이제 죽음은 중사가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스님의 살즉생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그는 적이 아닌 아군의 직속상관에 의해 죽을 운명에 처해졌다. 죽는 것은 전쟁에서 흔한 일이었으나 이런 죽음은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원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의 것이었다. 대원은 대검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사의 등 뒤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적과 육박전을 벌여야 할 지 모르므로 착검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굴속에서 착검은 유용할 수도 있고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었다.

중사의 마음먹기에 따라 그 것은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할 수 있는 이유가 열 가지라면 그렇지 않을 이유는 스무 가지도 넘었다.

대원은 자연스럽게 착검의 순간을 기다렸다. 총소리는 아무래도 중사와 자신의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등 뒤에서 총질은 의미가 없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굳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원의 판단이었다. 중사를 믿고 끝까지 따라가서 작전을 마치고 무사귀환 할 수도 있었다.

1%의 성공확률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바라던 하사로 승진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률이 너무 낮았고 대원은 그런 모험에 기대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하기로 했다.

삶과 죽음을 운명보다는 자신의 손에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중사가 뒤에서 하는 대원의 소리를 들었을 때 살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서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대원에게 불어오고 있었다. 목소리는 시베리아의 찬바람으로 그의 귓전을 때렸다.

중사는 하지만 착검에 대한 대비는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자신을 해칠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제 그 것이 명확해졌다. 대원은 자신을 총이 아닌 대검으로 살해하고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지금 바로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고 직감했다.

죽음 앞에서 살기 위해 중사가 취할 행동은 단 한가지였다. 죽음을 불러오는 요인을 앞서서 먼저 제거하는 것 뿐이었다.

중사는 멈칫 하다가 착검은 왜? 하고 뒤돌아서면서 되물었다. 눈은 대원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대원은 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착검 시 필연적으로 노출되는 소음을 중사가 걱정하고 있다고 여겼다.

대원은 불쑥 나타나는 적을 대검으로 해치자고 나직이 속삭이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언제 적의 발 앞에 걸려 넘어질지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때 너스레처럼 대원의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실제로는 짧았지만 중사가 듣기에 그 소리는 길고 긴 설명이었다. 중사는 대원이 말을 멈추었으나 잠시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자거나 하지 말자거나 동의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것은 중사가 대원을 처치할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처한 조치였다.

특공 무술로 단련된 중사 였지만 역시 무술 유단자인 대원을 총 없이 순식간에 제거하는 것은 쉬운 방법이 아니었다.

적 제거용 특수 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정확히 뒤에서 목을 감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끈은 손에 있지 않고 등 뒤의 군장에 달려 있었으므로 그것을 꺼내는 것은 대원의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었다.

중사 역시 대검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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