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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대원은 어두워 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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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대원은 어두워 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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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고요했다. 바람한 점 없는 산사의 여름날처럼 숨죽였다. 앞서가는 중사나 뒤따르는 대원은 같은 상태였다.

움직임이 없는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했다. 적을 코앞에 두고 공격 기회를 엿보면서 몸을 잔뜩 구부린 정글속의 재규어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 재규어는 몸이 거의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 있었다.

두 눈 만 내놓고 잠시 한 눈을 팔고 있는 크로커다일 악어를 기습하는 재규어의 점박이 무늬는 이 순간 위아래가 뒤틀렸다. 넓게 퍼지는 가죽은 두 개의 무늬를 하나로 합쳐 놓기도 했다. 짐승의 눈은 이 때 정확히 표현된다. 대낮인데도 양미간 사이에서 불이 번쩍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중사는 앞의 살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살기는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전투에 이골이 난 중사는 그 것을 금세 알아챘다. 총구에서 나오는 살기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뒤쪽의 기운이 강할 수록 앞쪽의 기운은 약해졌다.

중사는 대원이 딴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기회를 노렸다. 대원이 능수능란해도 중사를 따를 수는 없었다. 그는 분노의 마음을 감추고 뒤따라오는 살기가 가시거나 아니면 허점이 보일 때를 엿보고 있었다. 이제 적은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중사는 이를 갈았다. 생사가 달린 전투 현장에서 아군에게 살의를 느끼는 전우는 더 이상 전우가 아니라 적에 다름 아니었다. 왜일까, 대원의 흑심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중사는 대원을 죽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다기보다는 어서 뒤의 살기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만큼 시급한 상황이었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대원의 손에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중사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대원은 자신이 살아서 굴속을 빠져 나올 수는 없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중사는 죽기 전에는 굴속에서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중사의 부재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죽지 않는다는 신념은 중사가 계속 앞으로 나갈 때 변하기 시작했다. 더 전진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누가 보더라도 그러했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대원은 칠갑산 산골에 사는 홀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입대 전날 어머니는 하나뿐인 자식을 데리고 장곡사 큰 스님을 뵙고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큰 스님은 한 참 동안 묵상하더니 어렵게 입을 떼고는 살즉생 이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남겼다. 대원은 매고간 쌀자루를 시주 돈으로 내놓고 어두어 져서야 산길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온화했지만 근심 가득한 스님의 얼굴이 이 순간의 대원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가 살즉생이라는 말을 깨닫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중사를 죽여야 자신이 살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스님이 암시해 준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기회를 노렸다. 어느 시점에서 중사를 해 치울 것인지 가늠해 보았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설사 중사를 죽였다하더라도 자신이 밧줄이 있는 곳까지 돌아 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서두르다가는 중사의 역공에 말려 자신이 죽을지도 몰랐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식스틴을 그의 등에 대고 갈기는 것이었다. 총구는 항상 중사의 등에 닿고 있었으므로 조준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총소리는 중사는 물론 대원 자신도 죽는 길이었다.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것은 적지에서 반드시 피해할 전투교본이었다. 그 순간 대원은 허리춤에 찬 대검을 슬쩍 만져 보았다. 검은 대검 집에서 자신의 쓰임이 곧 있을지도 모를다는 예감을 받았는지 주인의 손이 다가오자 가볍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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