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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2 22:51 (목)
62. 확실한 것에 대해 대원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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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확실한 것에 대해 대원은 웃음을 지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2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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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감각이 없다는 말은 핑계였다. 핑계를 대서라도 앞서가는 것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대원에게 들었다.

이런 마음을 중사는 알아챘다.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중사의 의도였다. 대원과 중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대원은 자신이 아무렇게나 전진하고 있어도 중사가 제지 하지 않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당연히 중사는 길을 찾는데 자신보다 뛰어났고 본능적 행동에서도 앞섰다.

그럼에도 중사는 자신의 뒤에 붙어 따라 오고 있다. 대원은 걷는 걸음을 되도록 천천히 했다. 죽음의 순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그러는 동안 무슨 다른 꾀를 짜내려고 했다.

그 것은 다름아닌 중사의 급한 성격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전공이 있다면 당연히 그의 것이었다. 대원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짧고 명료한 단어로 어떤 것이 적절할 지 찾는데 열중했다.

단어 생각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이 중사의 총구는 연신 그의 등을 푹푹 찔러 댔다. 등에 딱 붙어 있던 중사의 앞가슴은 한 뼘 정도 사이를 뒀고 그 사이를 식스틴이 들어가 있었다.

어림없는 생각 말라는 듯이 중사는 거칠게 대원을 밀어 붙였다. 어둠 속에서 아무런 소음도 없는 공허한 밀림의 동굴 속에서 두 사람은 치열한 생존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반드시 사는 것은 아니었다. 둘 다 죽을 확률이 높았으나 두 사람은 죽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사는 가던 대원이 멈추자 이번에는 총구로 찌르기 전에 바싹 그에게 다가가 말 대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이 손으로 대원의 목을 잡아 앞으로 당겼다.

대원의 철모가 중사의 철모에 살짝 부딛쳤으나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원은 낌새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낌새가 이상해요."

이것이 대원이 생각해 낸 문장이었다. 낌새가 이상한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낌새라는 단어는 중사의 두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앞일에 대한 막연한 예상이나 짐작과는 다른 것이었다.

중사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것을 모르겠어요."

대원은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대답은 이번에도 간단했다. 중사는 허탈했으나 낌새라는 단어는 그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각인되면서 그의 전투 본능을 되살렸다.

앞에 적이 있다는 말인가. 사격하면 명중시킬 만한 거리에 적이 은신해 있다는 의미로 중사는 해석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격하기에 유리한 위치로 이동해야 했다. 대원은 등을 잡혀 중사의 뒤로 물러났다. 이제 앞선자는 대원이 아닌 중사였다.

대원은 중사가 했던 것처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사의 등뒤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달라 붙은 것을 털어내기 위한 제스처로 중사가 몸을 들썩였으나 대원은 중사처럼 총구로 등을 꾹꾹 찌를 수는 없었다.

그는 덮개에 쥔 손에 땀이 마르는 것을 느끼면서 히죽 입을 벌리고 웃었다. 이제 죽음은 자신의 것이 아닌 중사의 것이었다. 이 것은 확실하다고 대원은 한 번더 입을 벌리고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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