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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원은 온 몸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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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대원은 온 몸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2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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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밧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내려오기를 기다렸던 것이 불과 몇 분의 전의 일이었다. 작은 빛을 타고 아래로 실타래 풀리듯 풀리는 밧줄은 생명줄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온전히 지켜줄 밧줄을 애타게 기다린 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갖는 본능이었다. 그 것만 있으면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품으로 돌아 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바뀐 생각 때문에 밧줄은 더 이상 생명줄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어떤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중사는 시계 바늘의 째각거리는 부드러운 소리를 더 듣고 싶었으나 그만두고 대원을 총구로 툭 밀었다.

앞장서라는 신호였다. 대원은 알았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방향을 바꾼 몸은 조심스럽게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중사는 그 순간 뒤를 돌아보았고 빛 하나를 따라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흰 밧줄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얼핏 내려다보는 소대장의 얼굴을 보았다. 소대장은 밧줄을 보는지 밧줄을 잡을 중사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는지 양손으로 철모 주위를 가렸다.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였다.

중사는 잠시 멈추었으나 내려온 밧줄에 손을 대기보다는 다시 어둠속으로 몸을 돌렸다. 대원이 밧줄을 보지 못하도록 몸을 가리는 시늉까지 했다.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위쪽의 소대장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순간 중사는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런 생각을 버렸다.

중사는 앞장선 대원의 뒤를 따랐다. 이번에는 굳이 앞장서고 싶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항상 앞장섰으나 이번에는 멈칫 했던 것은 어떤 서늘한 기운이 앞장서는 것을 방해했다.

그래서 중사는 대원이 앞서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얼마를 가지 않아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죽은 대원의 시체에서 굳었으나 냄새마저 그렇게 하지 못했던 피의 냄새와 죽음의 흔적이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화약 냄새와 매캐한 연기까지 섞이자 대원은 흠칫 몸을 숙였다. 그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뒤돌아서 중사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 순간만큼은 대원은 기운이 온 몸에 뻗쳐 올랐다.

중사를 이끌고 자신이 적을 섬멸하러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사의 명령이 아니라 자시의 제의에 따라 중사가 동의해 준 작전이었으므로 자신의 목숨 같은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사는 어둠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원은 이제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고름을 빨아준 장군의 병사는 죽기를 다해 싸우지 않던가.

상처가 나아 고향으로 돌아온 어린 병사는 늙은 어머니에게 장군의 은총을 이야기 했고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전쟁에서 죽을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전투에서 고름병사는 장군의 외침에 따라 돌격 앞으로를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실행했고 그 댓가로 적의 총탄을 가장 앞서 맞았다.

그는 총알이 심장 깊숙이 박히는 그 순간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알아주는 장군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사내로서 더 바랄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중사의 대원도 그런 카타르시스를 맞보고 있었다. 소대장보다도 힘이 센 중사가 죽음의 순간에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잡았던 식스틴의 덮개에 힘을 주면서 반드시 남아 있는 적의 잔당을 깨끗이 처치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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