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7 06:01 (토)
59. 어둠속에서 희미한 미소가 빛났다
상태바
59. 어둠속에서 희미한 미소가 빛났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19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각이 바뀌자 중사는 다급했다. 추격 하는 데는 시간이 중요했다. 멀리 떠나기 전에 따라 잡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멈칫거리는 것은 오점이었다.

중사는 그러나 기다렸다. 대원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고 싶었다. 그가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다며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 해주기를 바랐다. 대원은 중사의 은근한 제의를 받자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도 없이 적을 섬멸하자고 주먹을 쥐었다.

자신이 존중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을 이런 식으로도 해야 한다고 대원은 생각했다. 비로소 그는 전투의 부속물이 아닌 주인공으로 우뚝 올랐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잡았던 소총의 덮개에 힘을 주었다.

“중사님, 죽은 대원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 서둘러야 합니다.”

평소 같으면 무슨 개소리냐고 타박을 주었을 중사였지만 지금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더구나 이런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중사는 부탁하는 투로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대원의 어깨를 잡고 이어 손을 아래로 내려 손에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상하관계가 아닌 동지의 관계로 격상됐다. 중사는 이제 뒤에서 총을 맞은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게됐다. 중사는 이런 대답을 해줘서 고맙다고 칭찬까지 했다.

중사와 대원은 죽은 대원의 실탄과 수류탄을 챙겨 각자 나누어 갖고 자리를 일어섰다. 일어서기 전에 중사는 대원의 손목에 걸려 있던 시계를 걷어 냈다.

그는 시계를 자신의 손에 차면서 이것은 귀국하면 유족에게 주겠다는 말을 대원이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칠흑 같은 어둠속이었지만 어떤 움직임만으로도 서로는 서로의 손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대원도 실탄을 수습하면서 그의 손에 걸린 손목시계에 잠시 주춤한 적이 있었고 그런 움직임을 중사는 눈치 챘다. 대원은 차가운 손에서 따뜻한 손을 땠고 중사는 자신이 죽은 대원의 왼쪽 손목에 걸려 있던 시계를 벗겨냈다.

스틸이 아닌 가죽으로 댄 시계줄은 부드러웠고 초침의 움직임은 일정했으며 세련됐다. 중사나 대원이나 죽은 대원의 시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시계는 스위스제였다. 고향 김제를 떠나 올 때 약혼자는 대원의 팔에 미래 장인이 될 아버지의 시계를 매어 주었다. 그 시계는 초등 교사를 오래 했던 아버지가 교감으로 정년퇴임을 할 때 가족들이 거금을 들여 산 것이었다.

시계를 사기 위해 가족 대표로 대원의 약혼녀는 서울에 올라왔고 종로의 유명한 금은방을 겸하는 시계상에서 샀던 것이다. 대원은 그 이야기를 소대원들이 있던 자리에서 한 적이 있었고 이후 그 시계는 애인의 시계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이제 그 시계의 주인공은 김제로 돌아가 장인에게 시간에 맞춰 인사를 하는 예를 올리지 못할 것이다. 애인의 시계는 중사의 손에서 째깍째깍 작은 소리를 쉬지 않고 냈다. 손을 들어 귀에 댄 중사는 어둠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