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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빠져 나가기보다 추격하기로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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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빠져 나가기보다 추격하기로 결심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14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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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가 갑자기 찾아왔다. 느닷없이 총소리가 그렇게 왔듯이 숨막힘도 한 순간이었다.

굴속을 점렴한 고요는 그야말로 조용했다. 귀청을 때려 고막을 잠시 동안 멀게 했던 총소리도 사라졌다. 적들의 소란스런 퇴각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고요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중사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적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들어갔던 지하에서 처참하게 패했다.

망설이던 소대장을 설득해 아니 반은 윽박질러서 자발적으로 침투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대원 한 명은 죽었다. 그리고 자신과 나머지 한 대원의 생명도 아직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숨진 병사의 몸을 통해 떨려오는 흔들림이 중사에게 전달됐다. 그는 밧줄을 애타게 기다렸다. 뚫린 구멍 밖으로는 햇빛이 스며들었으나 줄 같은 것은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날렵한 중사라 해도 7~8미터 깊이의 지하에서 빠져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굴은 곡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일직선이 아닌가.

처음에 중사는 죽은 병사의 몸 위에 다른 병사를 세우고 그 자신이 그 위에 올라타서 밖으로 탈출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봤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내 그만 두었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동굴 속을 압도했다. 동료의 죽음과 그가 흘린 피가 주변을 맴돌았다. 멀리서는 적의 냄새와 화약 연기가 섞여 들여 왔다.

굴 속은 아수라장이었고 난장판이었다. 볼 수 만 있다면 두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할 것이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도 사상자가 났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 명이 죽었고 여러 명이 다쳤을 것으로 중사는 확신했다. 그는 날아가는 총알이 정확히 적의 어느 부위에 관통했는지 느낌으로 알아챘다.

적어도 3명은 죽었고 5섯 명은 크게 다쳤다. 중사는 자기 확신을 한 번 더 확인 하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개 분대의 병력이 선제공격을 하고도 혼비백산해 도망친 것은 이 같은 실패 때문이었다.

적이 실패해서 후퇴했으나 중사는 성공했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그 역시 패배자였다. 적의 기습공격을 허용했으며 뛰어난 대원 하나를 잃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서 중사가 실패한 최초의 전투였다.

중사는 차라리 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했다. 아직 무기는 충분했다. 연발로 사격해 실탄을 많이 소모 하기는 했지만 여분의 탄환만으로도 일개 분대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고 수류탄은 두개나 있었다.

남은 대원의 무기와 죽은 대원의 실탄을 수습하면 뒤 쫒아 적을 섬멸 할 수 도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고요처럼 한 순간에 중사의 뇌리속에 이 생각이 들이찾다.

지리에 능숙한 적이라도 압도적인 화력을 경험했으므로 지금쯤 혼비백산 해 굴밖으로 나갔거나 나가지 않았어도 더 깊숙한 곳으로 은신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대원에게 이런 의중을 넌지시 비쳤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는 부하의 의견도 들어야 했다. 이것은 부하를 존중한다기 보다는 그의 사기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억지로 명령해서 가는 경우는 전과를 올리기 어려울뿐더러 자칫 자신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중사는 잘 알고 있었다.

뒤따르던 대원이 적을 향하던 대검의 방향을 돌리거나  한방 쏘고 뒤돌아 설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죽으면 개죽음이고 개죽음의 댓가로 그는 훈장을 받거나 두둑한 포상을 챙길 것이다.

중사는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러나느니 적을 추격하는 것이 어떠냐고 마치 부하가 상사에게 건의하는 것 같이 다정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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