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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01:19 (금)
57.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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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11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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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틴의 자동장치는 위력이 셌다. 방아쇠 한 번에 10여발의 탄알이 앞다투어 튀어 나갔다. 앞서 나가려고는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먼저 나가 적의 심장을 꿰뚫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벽에 부디 친 탄피가 등에 떨어져 전투복 위에서 지지 직 소리를 냈다. 탄피들도 탄알들처럼 서로 먼저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신이 감싸고 있던 탄알이 적의 심장을 꿰뚫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탄피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어머니의 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비록 감싸고 있기는 했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임무를 탄피는 맞고 있었다.

중사는 1,2초 간격을 두고 남아있는 대여섯 발의 탄알을 쏘았던 곳의 옆쪽으로 발사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은 고도의 훈련된 병사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자동 소총의 총구를 순식간에 바꾸는 것은 중사의 감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대원 두 명도 사격을 시작했다. 조준을 했다기보다는 얼떨결에 방아쇠를 당겼는데 이것은 중사의 행동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공포를 잊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소리가 더 큰 공포를 가져 왔으나 그 순간만큼은 악에 바쳐 소리를 질렀고 고함과 비명소리가 다르지 않았다.

굉음이 귀청을 때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적인 귀막힘 현상이 일어났다. 열린 두 귀는 어떤 음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비릿한 피 냄새가 중사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뒤에 있던 대원이 지른 소리였다. 중사는 순간 화가 치밀어 이 자식이, 하고 맞고함을 쳤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고개를 뒤로 돌리고 노려 보았다.

그러나 욕을 먹은 대원은 다른 때와는 달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만 무언가 막힌 것이 쏟아져 나올 때 나는 벌컥벌컥하는 소리만이 공간을 지배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굴 속에서 대원이 뿜는 소리는 순간적인 침묵을 압도했다.

피를 쏟으며 고양이 같은 그르렁 하는 소리가 박자를 맞춰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들려왔다. 중사는 대원의 죽음을 직감했다.

몸을 벽에 기댄 중사는 수류탄을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수류탄 투척은 자신에게도 피할 수 없는 피해가 오기 때문이다. 적을 죽이지만 자신도 치명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다.

중사는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귀를 바짝 기울이자 갑자기 뻥 뚫린 것처럼 세밀한 소리까지 전달됐다.

그 소리는 적들이 물러나가는 소란스런 움직임이었다. 적들도 죽거나 부상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는 안전핀을 뽑지 않았던 수류탄을 다시 탄띠에 매달고 몸을 땅에 댄 채로 조용히 대원의 이름을 불렀다.

대원 하나가 나직한 소리로 대답했다. 나머지 대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총을 맞은 대원은 숨졌다.

중사는 죽음의 냄새가 바로 자신의 옆에서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죽은 대원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밧줄을 찾았으나 아직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위에서도 이제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벌어진 심각한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지상에서 지하에서 들리는 총소리는 비록 약했지만 상황실은 그러한 내용을 보고 받았을 것이다. 중사는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가야 했다. 다행히 나머지 한 대원은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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