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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다리의 힘은 소진되지 않고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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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다리의 힘은 소진되지 않고 쌓여만 간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30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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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라 굴다리가 길게 느껴진다. 한 참을 지나도 위로 차가 여전히 지나고 있다. 사람이 걷는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차와 사람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목동 쪽으로 가는 차와 신도림 쪽으로 오는 사람이 서로 엇갈린다. 어렵게 그 밑을 지나간다. 검열이 심의에 통과한 기분이다.

내 마음을 살핀 절대자가 미리 그렇게 한 모양이다. 오른쪽으로 가려다 늘 다니던 왼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내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면 서쪽과 같은 곳이다.

어떤 곳이든 달려 나갈 공간이 있는데 굳이 왼쪽으로 한 것은 습관 때문이다. 굴다리를 통과한 다음에는 늘 오른쪽이 아닌 왼쪽이었다. 몸에 익어 굳어진 것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아무래도 몸도 긴장한다.

겁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여러 번 해봐서 친숙한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흰색 줄이 그어진 아스팔트가 깔린 안쪽으로 들어선다.

그 옆으로 새로 갈아엎은 곳에 풀들이 자란다. 뒤집어 놓은 흙 사이로 자란 풀은 청보리 색깔이다.

껍질을 벗고 나온 싹은 갈아엎은 흙을 먹고 자란다. 비단물결 흔들면서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난다.

나무처럼 줄기도 없는 것이 바람이 불기를 멈추면 꼿꼿하게 서 있다. 하늘에서 내리박힌 기둥처럼 견고해 어떤 뇌물도 비켜갈 것만 같다. 굳세고 곧은 것이 풀처럼 살아가라고 충동질 한다.

겨우 한 해를 살면서도 이처럼 부드럽고 당당할 수 있을까.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 보아도 부족할 게 없다. 대나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바람이 불면 그것은 징이나 북을 치면 나는 소리처럼 당당하게 소리친다. 귀 기울이면서 그런 소리와 비교해 보고 싶다. 멈추지 않고 제자리 뛰면서 그 것을 가만히 만져 본다.

만졌다고는 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다. 닿은 느낌은 거칠지 않고 연하며 매끄럽다. 싫지 않은 느낌이다.

손을 들어올리면 만졌던 냄새도 따라 오는데 영락없는 풀냄새다. 담배냄새처럼 역겨워서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속도 편하다. 메슥메슥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거슬리지 않는다.

순순히 그 냄새를 받아들인다. 언짢고 불쾌할 이유가 없다. 되레 마음은 시원하다. 앞이 뻥 뚫린 것처럼 거칠게 없다.

황토색의 땅은 연초록으로 바뀌고 심은 나무에서도 그런 색이 돋아나고 있다. 거짓의 껍데기가 사라진 자리에 진실의 알맹이가 채우고 있다. 4월은 그런 달이다. 작은 다리를 지난다. 정화된 물이 안양천과 합류한다.

검은 물이 자연스럽게 섞여 든다. 그 지점으로 잉어들이 모여든다. 온도가 다르고 흐르는 물이 합치는 곳은 고기들이 좋아한다.  다리 난간 사이로 쑥쑥 비어저 나온 뽕나무의 새순이 어느 새 틈을 지집고 나올 만큼 커져 있다.

어제 보다 몸이 가볍다. 내친김에 돌아나와 오금교까지 가야지. 다리에 힘이 붙는다. 힘은 갈수록 소진되지 않고 쌓인다. 어느 새 돌탑이다.고개숙인 영혼들이 활동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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