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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1:48 (금)
36. 지저귀고 비상하자 발의 통증이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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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지저귀고 비상하자 발의 통증이 가셨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2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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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출발점을 말해 주지 않았듯이 종착점도 그랬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하는 곳도 멈추는 곳도 일치했다. 출발 총성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발바닥을 누가 근질이는 것 같다. 오래 참기 시합을 하듯이 웃지 않고 버틸 때까지 버텨 본다.

버티는 힘은 참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새로 심은 큰 나무 주위로 작은 사철나무가 빼곡하다.

큰 나무를 보호하려고 작은 나무를 울타리로 썼다. 울타리는 색칠을 하지 않았어도 보기에 좋았다.

파란 그것은 하얀눈이 와도 제 색을 잃지 않는다. 벌써부터 한 겨울이 그리워진다. 울타리는 길었다. 한 참을 오른쪽에 끼고 달릴 때 참새 떼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쉬기보다는 숨기에 적당한 장소를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갈색의 새들 가운데 파랑새가 한 마리 보인다. 수탈을 위해 바다를 건너 온 놈은 자세히 보니 한 마리가 아니고 떼 전체였다.

참새 떼가 아니고 파랑새 떼가 사철나무에 숨자 색의 구별이 어려웠다. 꼭꼭 숨어서 사람의 손에 잡힐 리 없던 놈들은 더 많은 동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새소리 아닌 짐승소리를 냈고 날개 대신 노를 저으며 고요한 아침의 땅에 총을 앞세우고 쳐들어 왔다.

색이 파란 옷을 입은 그들은 박힌 흰 돌을 여러 번 쪼아서 빼 내고 그곳에 함께 가지고 온 돌을 박았다. 그것들은 더 세고 더 강했으므로 한 번 박힌 뒤로는 누구도 힘으로 그것을 빼내지 못했다.

외세를 막기 보다는 자기나라 백성들을 찔러대기 위해 병사들을 훈련시켰던 임금은 그들의 횡포를 알고도 모른 척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그렇게 하라고 부추겼다.

그들은 같잖은 것이 허락한다고 얕잡아 보면서 마음 놓고 남의 것을 제 것 인양 뻬앗았다. 곡식을 가득 실은 배는 하루 종일 현해탄을 가로 질러 갔으나 손이 허물도록 배에 실었던 백성들은 굶어서 죽은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정을 일삼던 고부 지역의 군수는 배를 곯는 어미를 위해 살을 베어 먹이는 자식들에게 불효한다고 잡아 들였다. 파랑새보다 진한 파란색을 입은 그는 나날이 새로운 방법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고 관아의 뜰에 엎어놓고 곤장을 치는가 하면 음탕하다며 비쩍 마른 사지를 지지고 투전판을 기웃거린다고 목을 베었다.

파란 색의 거머리는 질겼다. 질긴 거머리는 손으로 잡아떼기 보다는 소금을 한 주먹 쥐고 살이 피가 나도록 비벼대거나 돌로 종아리뼈가 드러나도록 찧어야만 겨우 떨어지는 시늉을 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 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농민들이 낫으로 풀을 베지 않고 삽으로 땅을 파는 대신 그것을 들고 관청으로 몰려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운 뒤였다.

뜬 눈으로 날을 세운 갑오년 어느 날에 전씨 성을 가진 녹두장군이 앞장섰을 때 따르는 무리는 셀 수 없이 많아 겁을 먹은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달랬다.

있던 겁을 내팽개치자 그들은 한 달음에 서울로 몰려들었다. 오는 방향이 자신이 있는 곳임을 안 임금이 파랑새떼들에게 그들을 도륙해달라고 청하기 전에 새들은 미리 알고 녹두밭에 숨어있던 장군을 포획했다.

그물 속에 든 그는 물고기처럼 발버둥 쳤으나 코는 촘촘해 벗어나지 못했다. 백성들의 노래도 헛되이 그는 목에 긴 칼을 차고 서울로 압송됐다.

1895년 새벽 두시에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밝은 날에 만백성을 모아놓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고 본때를 보여 주려는 시도는 그가 전날 받은 고문으로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죽기 전에 서둘렀던 것이다.

한성부 중부 서린방의 전옥서에서 간수들이 목에 줄을 감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제 몸 하나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다만 눈을 부릅 뜬 째였다.

입을 달싹이던 그에게 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귀를 갖다 대자 마치 산사람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떼를 만나서는 하늘과 땅도 모두 힘을 합치더니/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하는 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나라를 위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줄까.’

그는 횃불을 들었던 그 다음해 4월 23일 이 말을 내 뱉고는 스스로 혀를 깨물어 죽었다.

사철나무 뒤에 숨었던 새들이 날아올랐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때 파랑새는 간데없고 참새 떼의 지저귀는 소리가 안양천에 흘러들었다. 소리에 놀란 잉어들이 튀어 오르는 곳을 쳐다보자 이인은 발바닥이 아픈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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