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계의 악몽과도 같은 원격의료 관련 법안이 또 다시 등장했다.
의협은 발의된 법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견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는 한편, 법안 저지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은 28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논의하고, 반대의견을 담은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
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섬·벽지에 사는 사람 또는 조업이나 운송·여객을 위해 해상에 나가 있는 선원 등에게 원격의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국민편의 증진과 의료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협은 개정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의협은 ▲원격의료 허용 범위 ▲시설·장비 기준 ▲원격의료 대상 및 초재진 기준 ▲원격의료 시행주체 ▲원격지의사 동의 준수사항 ▲원격의료 책임소재 등으로 나눠, 해당 개정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원격의료 허용 범위에 대해 “원격의료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국토면적 대비 의사 수(의사밀도)는 1㎢당 0.98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며 “언제든 대면진료가 가능한 의료접근성이 뛰어난 나라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진단, 치료, 처방 등의 원격의료 허용은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오히려 현행 규정을 바탕으로 의료인간 원격의료, 도서벽지 등에 대한 방문진료, 군인과 교정시설에 대한 민간의료기관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접근성 확대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이어 시설, 장비 기준에 대해서는 “원격의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각종 측정기기, 전송장치인 게이트웨이, 화상장비 등 많은 ICT 장비가 필요하며, 장비 및 프로그램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며 “이는 원격의료를 행하는 의료기관 뿐 아니라 대상자로 판단되는 약 800여만명의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원격의료 대상 및 초재진 기준에 대해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 등을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환자로 규정한 것 자체가 행정편의주의적인 시각”이라며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는 합병증과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 의학적으로 위험한 환자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고혈압과 당뇨 유병자의 적정 수준 관리비율은 43.3%와 29.7%에 불과해 의료기관 방문을 통한 의사의 환자들에 대한 직접 관리를 통한 만성질환자 관리가 추진돼야한다”며 “원격의료가 아닌 1차 진료 의사의 육성과 지원을 통해 대면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1차 진료 의사가 효율적으로 전원시킬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가정폭력 환자, 정신질환자의 경우엔 이들은 정보유출과 사이비 의료행위로 인한 2차 피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또한 의협은 “원격의료는 중증질환 치료, 연구중심으로 나가야 할 대형병원이 외래 원격의료에 치중하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 것”이라며 “결국 의료접근성을 강화하겠다고 추진한 원격의료 때문에 접근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모순을 초래한다”고 질타했다.
원격의료로 인한 책임소재에 대해 의협은 “원격지 의사가 대면진료와 같은 수준의 책임을 지고 환자가 원격지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우와 환자가 갖춘 장비의 결함으로 인한 경우, 원격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을 경우를 예외로 하고 있다”며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보다 사고의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는 근원을 차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대해 산업계 요구 및 일부의 경제적 효용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등 의료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건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위협하는 대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원격의료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