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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위원회 현애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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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위원회 현애자 의원
  • 의약뉴스
  • 승인 200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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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보장 법률안이 통과될 때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민노당 현애자의원은 의정활동에서 가장 기쁜 순간을 "장애인 이동권보장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 될 때"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장애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비록 원안대로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진전이 있는 법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그는 장애우들과 계속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정책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현의원은 장애인 문제 뿐만 아니라 농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제주도의 흙과 돌과 바람 속에서 16년을 보낸 농민이 바로 현의원이다.

세 아이의 엄마로, 억세고 부지런한 제주도 여성농민으로 살아온 그는 20대에 경희대와 제주도에서 문화활동을 펼쳤다. 특히 농촌활동을 하면서 농민이 되기로 결심한 후 지금까지 농민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남편도 제주도의 농민활동가다.

그렇게 살아왔던 그였기에 보건복지위는 처음에 낯설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농민의 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으니까요.하지만 이제 정리 했습니다. 여성농민단체와 T/F를 꾸려 농민복지 정책개발에 힘을 쏟을 작정입니다.”

여전히 제주도의 토속된장으로 음식을 해먹고, 동네의 활어차에서 파는 싱싱한 해산물을 즐기는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제주도에 가면 아이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함께 하지 못하는 막내딸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디. 지금은 의정활동 초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엄마’ 노릇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됐다.

“16년 동안 여성농민활동을 하다 여의도에 오니 많이 놀랐습니다. 문화활동의 폭이 너무 좁았고 편의성에 익숙하지 않았죠.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건강이 안 좋아 서울에서 내려간 뒤 그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여의도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으로 극복해 냈다.

“상반기는 보건복지위 활동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시기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법안을 발의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의원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면 힘도 나고 격려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늘 현장에 가려고 노력한다.

“의정활동 초기에는 취약한 공공의료와 부실한 의료전달체계, 양한방 통합의료시스템 등에 정책관심을 많이 두었습니다. 지금은 당에서 추진하는 무상의료정책에 상당한 부분이 반영돼 추진되고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정부의 책임성을 높이는 보장성강화와 공공의료중심의 전달체계에 정책개발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민노당의 무상의료정책에 관해 “부정적인 사람들이 갖는 무상의료에 관한 피상적인 이해 때문입니다. 상임위에서 심의하게 되면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임을 강조했다.

“정치적 입장에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정책과 다른 의원들의 정책에도 많은 부분이 반영돼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고경화의원도 100%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500만 명의 빈곤층 중에 150만 명만이 혜택을 받고 350만명이 소외되고 있다" 며" 소외계층을 줄이고 없애 국민건강권을 확보하는 무상의료정책에 공감하고 동참해주기 바란다" 고 환하게 웃었다.

의약뉴스 박현봉 기자(nicebong@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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