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보공단이 소유하고 있는 사무장병원 등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라고 민간보험사에서 소송에 나섰지만 개인정보가 포함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특히 이번 소송에 대한 소식을 접한 의료계에서는 ‘어이가 없는 소송’이라며 발끈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는 최근 M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 및 기각했다.
M보험사는 지난해 9월경 건보공단에게 ‘현재까지 의료법 제33조 제2항, 제8항 위반으로 적발된 이른바 사무장병원, 이중개설병원의 사무장 및 봉직의 주소,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관련 판결문, 기타 적발자료’를 공개해줄 것을 요구했다.
M사가 요구한 자료는 2009∼2015년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된 의료기관의 ▲명칭 및 기호 ▲징수금액 ▲처분대상자 등이 수록된 목록 ▲부당이득징수결정서 ▲건보공단이 사무장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판결문 등이다.
이에 건보공단은 M사에 “이 사건 정보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3호, 제6호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의 정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M사는 “사무장병원이나 이중개설병원은 필연적으로 허위입원·허위진단서 발급·허위진료비 청구 등 불법행위로 보험금을 편취하게 된다”며 “관련 불법행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의 권리구제를 위한 정보는 비공개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민건강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고 공영·민영보험의 부담을 감소시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며 “건보공단의 정보 공개 거부 결정이 위법하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M사가 정보 공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사무장병원 등을 설립·운영한 자 또는 이를 이용한 보험가입자에 대해 보험금 편취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나 부당이득 청구 같은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가능성에 불과하다”며 “막연한 가능성 때문에 의료기관이나 운영자는 합리적 이유없이 사생활의 비밀이 담겨 있는 정보를 공개당하는 처지에 서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보험사는 보험가입자의 청구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지급이 적절한지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보험사에게 정보주체의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하면서까지 정보를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사무장병원·이중개설병원을 이용한 보험가입자에 대해서도 허위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의심해 민사소송 등을 제기할 수도 있고, 가입자의 경우 사무장병원이나 이중개설병원인지 모르고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 자칫하면 선의의 가입자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면서 “공개하는 것이 개개인의 권리 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소송이 알려지자 의료계는 ‘어이가 없는 소송’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민간보험사에서 요구한 건보공단의 정보를 개인정보”라며 “건보공단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건보재정 누수 방지의 목적인데, 이런 정보가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해서 활용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각종 법에 저촉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보험사의 돈 논리에 따라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 자체가 결여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이번 소송은 건보공단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보험사가 사익을 위해 사용하려고 한 것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판결”이라며 “건보공단에서 이 같은 정보를 공개하게 됐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됐을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현명하고 합당한 판단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