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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약사회 고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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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약사회 고미지 회장
  • 의약뉴스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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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아실현과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각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약 15만개의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하고 그 직업 안에서도 개인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목표를 추구한다. 약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약사의 권익보호와 위상증진이라는 목표를 두고 일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두 가지 목표에는 다양한 경로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여약사회 고미지 회장은 대한약사회와 한국여약사회가 결코 다른 단체가 아님을 강조한다. 대약과 한국여약사회는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만 다를 뿐 결국 약사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 이번 달로 취임 6개월째를 맞는 고 회장을 만나 저간의 소식과 앞으로 한국여약사회의 행보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여약사회는 어떤 단체인가

1990년에 전주에서 제 1회 여약사대회가 열렸다. 그 때는 여약사들의 위상이 참으로 미약했던 시절이었다. 여약사는 항상 남약사의 보조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변두리를 돌았다. 약사회에서는 학교 파벌과 세력에 있어서 우세한 쪽에서만 회장이 나왔고 여약사는 회장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부회장 자리만 겨우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숫자나 파워로도 결코 남약사들에게 밀리지 않는데도 여약사들은 주변인으로 머물렀고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그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조윤정 원로님을 비롯한 여러 여약사들이 주축이 되어 90년도에 대한여약사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한여약사회는 ‘한국여약사회’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

-2005년 한국여약사회의 정체성

이제 여약사들의 위상은 10여 년 전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 회장도 직선제로 뽑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여약사들도 동등하게 남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한국여약사회도 그전과는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대약과 차별되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론은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대약은 약사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정책적’인 면을 지원한다. 전방에서 직접적으로 약사위상을 위해 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여약사회는 후방에서 간접적으로 약사의 위상을 제고한다.

직접적인 부딪힘으로 인해 잃는 것들을 우리가 다시 세우고 다독인다. 우리는 봉사활동과 같은 사업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기적인 장사꾼으로 비쳐진 약사들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있다. 간접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여자라서 하는 역할은 아니다. 효율적인 약사 위상 제고를 위해 각자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취임 6개월째를 맞았는데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석남동 성당의 이태리 신부님과 노숙자를 위한 사업을 벌였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신부님은 음식배급, 의복배급, 무료투약 등의 프로그램으로 지원사업을 벌였다. 우리는 무료투약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항상 약이 모자랐다. 특히 전문약들이 너무 부족해서 우리는 재활용문화행사와 자선바자회 등의 수익금으로 약을 주문해서 투약했다.

그 때가 가장 기쁘기도 했지만 안타까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더 많이 도와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 때문에 많이 아쉬웠다.
대약은 정기적으로 회비를 걷고 있지만 한국여약사회는 아직 사단법인으로 출범하지 못했고 회비도 자발적으로 걷어야 하는 상태다. 봉사할 때마다 항상 자금이 부족하고 그게 가장 안타깝다.

-그동안 한국여약사회는 어떤 사업을 벌였나

한국여약사회는 국내외적으로 바자회를 개최하고 또 참가하고 있다. 봉사약국과 무료투약 ,‘북한동포돕기’와 같은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약사들도 좋은 일을 하는군요”라는 주위의 반응이 있었고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는 약사’를 위해 세미나도 자주 열고 있다. 작년에는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8년 전부터 숨어서 일하는 약사를 발견하기 위해 ‘유재라봉사상’을 수여하고 있다.
작년에는 자신의 생활비로 불우 노인과 함께 생활하고 파고다 등지에서 무료투약 활동을 벌여온 약사 한 분을 표창했다. 사회 환원 정신이야 말로 약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겠는가.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올해는 ‘공부하는 약사상’을 구축하기 위해 구체적인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학술대회의 등록을 준비하고 있고 1년에 한번씩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또한 올해는 대한여약사회의 사단법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여약사회가 사단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큰 일을 벌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여약사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단법인 등록은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고 회장은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다고 했다. 고 회장의 집안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자매가 모두 음악가들이었다고. 그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언니들은 피아노와 첼로를, 의사였던 그의 모친은 풍금을 연주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선 세상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자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보다는 세상을 모나지 않게 아우를 수 있는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남을 기쁘게 해야 나 또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그와 한국여약사회가 약사의 위상 제고는 물론 소외된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의약뉴스 박미애 기자 (muvic@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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