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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양철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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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양철북(1979)
  • 의약뉴스
  • 승인 2015.05.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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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애 늙은이가 때로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 데이빗 벤펜트)만 해도 그렇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세 살 아이가 알 것 다 알아버렸으니 이 아이의 행동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된다.

카드놀이를 하면 손은 식탁위에 있고 발은 아래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엄마 아그네스( 안젤로 빙글러)는 신발을 벗은 남자의 긴 발가락이 바닥이 아닌 무릎 사이로 들어오는데도 싫은 내색이 없다. 오히려 좋은 표정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오스카는 이 장면을 보고 심사가 괴롭다. 3살 먹은 아이가 무얼 알겠느냐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면 이는 오스카를 잘못 본 것이다. 그는 어른이 돼야만 아는 세상물정을 미리 다 알아 버린 애 늙은이가 아닌가.

장래가 두렵고 인생의 환멸이 오스카에 찾아온 것은 당연하다. 그는 고의로 추락해 영원히 세 살짜리 난쟁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성장을 멈춘다.

실로 대담무쌍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마체라스( 마리오 아돌프)인지 얀 브론스키(다니엘 올브리히스키)알 수 없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이 빛나는 60촉 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태어나기 전인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갈 까 하다가 세 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 준다는 말에 그냥 세상에서 살기로 작정한 오스카. 그는 언제나 양철북을 허리에 매고 북을 두드린다. 양철북은 둘 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어느 날 북을 뺏기지 않기 위해 소리 지르다가 시계의 유리가 박살나는 것을 본 오스카는 고함을 치면 유리가 깨지고 아무도 북을 빼앗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챈다.

누구든지 북에 손을 대면 소리를 질렀고 그러면 여지없이 유리가 박살났다. 거리의 가로등도 선생님의 안경알도 표본실의 동물을 담은 유리병도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 놀음으로 눈이 멀고 오스카는 그런 엄마의 이중행동에 마음이 괴롭다. 북을 치는 것으로 오스카는 이런 심사를 달랜다.

북이 찢어지면 새북을 주는 가게주인도 있으니 그런대로 세상은 견딜만하지 않은가. ( 가게주인은 흔치 않은 아름다운 손을 가진 엄마에 연정을 품지만 샌님 스타일이어서 잠자리를 갖지는 못한다.)

엄마는 마체라스와는 한 집에서 살면서 얀과는 목요일마다 싸구려 호텔에서 일을 치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오스카는 고함을 지를 때가 온 것을 직감한다. 호텔의 유리창이 작살나고 엄마는 나하고는 상관없는데 무슨 일이지? 하는 듯이 태연하게 아래를 내려다본다.

집에 와서는 오늘 재미 좋았느냐는 마체라스의 질문에 어디서나 총통 연설뿐이라고 되레 짜증을 낸다. ( 방귀 뀐 사람이 성내는 것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별 차이가 없다.)

어느 날 동네에 야외 서커스가 들어오고 당연히 너무 작아 어디서나 눈에 띄는 난쟁이들의 묘기가 펼쳐진다. (거기서 오스카는 나중에 공연을 같이 하게 될 12살에 성장을 멈춘 52세의 난장이를 만나고 사랑하는 여인도 만난다.)

독일인 마체라스는 새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치 완장을 차고 방관자 대신 역사의 주역이 되기로 결심한다. 폴란드인 얀은 그런 마체라스가 걱정이다.

장면은 바뀌어 파도가 잔잔한 어느 바닷가. 어부는 그물을 당기고 오스카와 엄마와 마체라스 ,얀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끌려 나온 것은 잘린 말머리.

그 속에는 길고 살찐 윤기 나는 바닷장어가 득시글하다. 구역질 하던 엄마는 처음에는 거절하가 남자와 격한 신음 소리를 낸 후에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이번에도 오스카는 마음이 편치 않는데 그것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알 것 다 아는 남자여서 일 것이다.

나치의 기세는 더 세지고 여전히 흑심이 가득한 유태인 가게 주인은 폴란드인 얀 보다는 독일인 마체라스를 잡으라고 엄마에게 충고하다가 개종했으니 차라리 나와 오스카와 셋이서 런던에서 살자고 꼬드긴다.

엄마는 혼란스럽다. 생선을 입에 대지도 않더니 3주째 정어리만 먹는데 죽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살고 싶은 생각은 더더구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마침내 누구 아이 인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한 엄마는 자살하고 마체라스는 오스카의 할머니(장모)가 16살 먹은 일할 여자 마리아 ( 카타리나 탈 바흐) 를 데려오자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마체라스의 아내가 되기 전에 오스카와 먼저 잠자리를 한 마리아는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는 오스카의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이를 어르던 오스카는 세 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주고 성장을 멈추고 싶다고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전선이 열세로 빠지자 나치는 선전전을 더욱 강화하고 오스카는 서커스단에서 샴페인 잔을 깨는 묘기를 부리면서 동료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남자의 역할에 만족스럽다.

노벨상 작가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이 원작이다. 폰 커 슈렌 도르프 감독은 <양철북>( The thin drum)을 통해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사회상과 역사를 촘촘히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시종일관 충격과 공포가 화면에 빼곡하다. 하녀였다가 계모가 되는 매혹적인 여자 마리아와 벌이는 손에 설탕을 붓고 침을 발라 먹는 애정행각은 강박적인 섹슈얼리티를 제대로 표현했다.
국가: 독일
감독: 폰 커 슐렌 도르프
출연: 다비두 바렌츠, 마리오 아돌프, 안젤로 빙글러
평점:

 

팁: 원작자 권터 그라스는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났다. 1957년 나온 책이 영화보다 먼저 유명세를 탔으며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일의 양심으로 알려진 작가는 세기의 작품인 양철북을 통해 할 말을 하는 용기 있는 작가로 오늘날에도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탱크 병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나치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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