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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귀신이 온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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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귀신이 온다(2000)
  • 의약뉴스
  • 승인 2014.09.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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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황당한 일을 겪는 것이 인생이다.

남의 집 젊은 며느리 유아(강홍파)와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면서까지 열심히 그 일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면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누구냐? 라는 떨리는 외침에 좀도둑이라면 인기척에 놀라 도망이라도 가겠지만 총도 있고 칼도 있는 ‘나’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정체불명의 괴한 ‘나’라는 자는 자루 두 개를 젊은 남녀 앞에 던져 놓는다.

섣달 그뭄이 닷새 후이니 반드시 찾으러 온 다는 정월 초하루가 멀지 않다.

일본군에 신고하면 네 놈을 죽이고 마을 사람들도 죽인다고 이마에 권총을 들이대니 철건리 시골 촌놈 마다산(강문)은 연신 예, 예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강문 감독의 ‘귀신이 온다’(원제: Devils on the doorstep)는 전체적으로 웃기는 영화다. 그런데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웃다가 보면 화가 나고 화를 내다보면 마음속 깊은 심연에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점령지역 중국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람이 담긴 두 자루 이야기’ 는 힘없는 국가의 불쌍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자루를 떠맡은 마다산은 두 사람을 심문해 놓으라는 이름대신 ‘나’라는 자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마을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마을은 일대 긴장에 휩싸인다.

심문 결과 자루 속의 하나는 일본군 하급 졸병 하나야( 카가와 테루유키) 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인 통역병이다.

살기 위해 거꾸로 통역하는 중국인과 깨끗하게 죽게 해달라는 천황의 군대에 자부심이 대단한 일본군의 기개는 나라를 빼앗긴 중국과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의 우유부단함과 마다산의 착하기만 하고 순진하기만 행동은 보는 내내 중국인라면 울화통이, 일본인이라면 맥주 한잔을 먹으며 박장대소하기에 딱 알맞다.

영화는 중반을 지나 종반으로 가면서 웃음 대신 노인과 아이를 찔러 죽이고 마을을 쓸어버리는 참혹한 광경에 넋을 잃게 만든다.

중국은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 시키고 감독 겸 주연으로 출연한 강문을 7년간 활동정지 시켰다. 보여주기 싫은 나약하고 비굴한 중국민족의 전형을 그렸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루쉰’의 ‘아큐정전’과 겹쳐졌다. 결론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 잘 난체만 하다 결국 비굴하게 생을 마감하는 아큐와 마다산의 일생이 자꾸 중첩되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마다산은 그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치료해준 일본군의 군도에 의해 목이 잘린다. 잘리기 전 마다산은 긴 군도를 든 하나야를 힐끗 본다.

닭의 모가지처럼 비틀어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살려둔 것을 후회하는 눈빛일까. 강렬한 태양은 그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데 어렵다.

잘린 목은 아홉 번 구르고 세 번 눈을 껌벅이지 않고 겨우 서너 번 구르다 멈추고 단 한 번의 눈 껌벅임으로 더 이상 미동이 없다. 한쪽입엔 옅은 미소가 흐르는 듯한데  죽음에 감사하는 미소인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조국에서 이제는 포로가 된 일본군의 군도에 목이 잘리는 마다산의 잘린 목 앞에서 우리는 세상을 착하게만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말로에 대신 분노한다.

왠지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아주 애처롭고 씁쓸한 것은 식민지 시절 권력 앞에 굽신 거리던 우리 백성들의 처지가 마다산의 그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웃음 대신 속울음이 터져 나온다.

시작과 끝 부분의 아주 짧은 동일한 컬러화면 대신 내내 흑백이 시선을 압도한다. 재 53회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 그랑프리를 수상할 만큼 그 해 영화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해군 군악대의 행진곡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아큐에게 정전을 지어준 루쉰이 이 영화를 봤다면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했을까.

국가: 중국
감독: 강문
출연: 강문, 카가와 테루유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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