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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별들의 고향(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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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별들의 고향(1974)
  • 의약뉴스
  • 승인 2014.06.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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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짙게 바르고 껌을 질겅질겅 씹는다.

술을 밥보다 좋아하고 남자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  눈뜨면 화투패를 돌리고 담배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경아(안인숙)의 모습이다. 아직 젊고 얼굴은 예쁘장한데 붙임성이 좋다.

이런 여자, 사내들이 눈여겨본다. 제 나이도 잘 모르지만 아마 25살이 맞을 거다.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경아. 그러면 돈 주고 여자를 사겠다는 남자(하용수)가 첫사랑이다.

이런 사랑 깨지고 쉽고 깨진다. 두 번째 남자(윤일봉)는 늘 검은 옷과 검은 양말을 신는 딸이 있다. 전처는 자살했다. 돈 많은 남자의 후처로 들어간 경아는 잠시 동안 살림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시는 술은 소주대신 조니워커로 바뀌었다. 애 낳고 알콩달콩 잘 살면 이 영화를 보러 무려 45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을 리 없다. 몰지각한 의사는 경아의 중절수술 경험을 망설임 없이 발설한다.

 
세 번째 남자(백일섭)는 순 날건달이다. 자신이 길을 들인 여자인 만큼 소유권을 주장한다. 경아는 누드모델이 되고 술집 호스티스 김미영이 된다. 어느 날 중년의 남자 문오(신성일)가 손님으로 온다. 그림을 그려준 문오에게 경아는 호감을 느낀다.

경아는 네 번째 남자와 동거생활을 한다.

이 사랑 해피하다. 낮이면 할 일 없는 두 사람, 장을 보고 그네를 타고 논다. 어두운 밤이면 그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없다. 이 때 관객들은 붉은 입술이 벌어지고 그 안에 있는 경아의 가지런한 흰 치아를 보고 침을 삼킨다.

오래갈까. 관객들은 두 사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헤어질지 조바심을 낸다.

흰 눈이 쌓인 겨울 강가가 예사롭지 않다. 걸으면 포드득 소리가 크게 들리는 텅 빈 들판에 이장희의 애잔한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흘러나온다.

그 좋은 술을 끊고 대학에서 후학을 열심히 가르치는 문오에게 세 번째 남자가 찾아온다.

알코올 중독자 경아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문오는 경아를 찾아 나서지만 김미영은 술집에 없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경아가 커다란 트렁크를 내민다.

두 사람 또 해피하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한지 한 참 지났고 이제 끝내야 한다. 지금까지 어려운 고비를 잘 달려 왔다.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책임이 감독에게 있다.

내일이면 새해다.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이지만 새해가 되면 각자 제갈길로 간다.

경아는 술을 마신다. 마시는 폼이 멋지다. 경아가 술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주 한 잔이 그리워 진다. 옆 사내가 추파를 던진다. 경아는 이 남자에게 (그래, 죽으면 썪어 문드러질 육체, 가져가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시가 육보시 아닌가.) 선심 쓰듯 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스쳐간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다. 경아의 최후는 짐작한데로 겨울 강가다. 약을 먹고 물 대신 눈 한 주먹을 먹는다.

‘경아, 안녕’

70년대를 풍미했던 '우리들의 경아'는 그렇게 작별했다. 죽으면 화장해서 강가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문오는 실행 했을까. 이 영화는 숱한 화제를 남겼다. 영화의 대사는 금세 유행어가 됐다.

“키스할 땐 눈을 감는거야. 경아, 오랜만에 옆에 누워보는군, 행복해요. 내 입술은 작은 술잔, 예쁜 술잔이다. 선생님 추워요. 상처는 같다, 서로 용서하면서 살자.”

유신독재의 어두운 시대. 감독은 이런 영화 말고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외부검열과 자기검열이 없었다면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수작이다.

당시 유행했던 통 키타 가수들의 명곡(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 있네요.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 휘파람을 불어요 등)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이 원작이다.

국가: 한국
감독: 이장호
출연: 신성일, 안인숙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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