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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씨클로(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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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씨클로(1995)
  • 의약뉴스
  • 승인 2014.05.1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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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것은 가난이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가난하니 자식도 가난하다.

빼앗길 것이 없어 두려울 것이 없지만 가진 것이 없으니 슬프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고 말해야할 청소년기에 인력거꾼으로 살아야 하는 18살 젊은 날의 청춘, 씨클로 보이( 레반 록)는 평생 웃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뭐, 웃을 일도 없다.

코흘리개 여동생은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누나(트란 누 엔케)는 물을 나르고,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바람 넣는 펌프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참으로 구질구질한 가족이다. 보이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됐다. 혁명의 나라 베트남도 가난은 별수 없다. 철사로 묶은 쪼리를 신고 씨클로를 모는 보이에게 운 좋게도 기회가 온다.

가난한 자들이 대개 순진해서 법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영화가 되려고 그러는지 소년은 어울리지 않게 갱의 소굴에 발을 담근다.

이제부터 구질구질 한 것 대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달러는 뭉텅이로 던져진다. 갱단의 두목(양조위)은 거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말이 없다. 말 대신 담배를 물고 산다. 누나도 갱단으로 들어온다.

매춘을 위해서다.  참, 영화지만 딱하다. 남자가 보는 앞에서 강제로 물을 먹고 서서 오줌을 누는 누나의 인생. 보고 싶지 않지만 아니 볼 수 없다.

쌀 창고에 불을 지르는 첫 번째 임무를 무사히 마친 보이는 똥 묻은 얼굴을 어항에 집어넣고 잠깐 동안 짧은 웃음을 짓는다. 웃는 그의 입에는 금붕어가 살기 위해 입을 뻐금거린다.

이제 소년은 동료들로부터 갱단으로 정식 인정을 받는다. 두목은 그에게 담력을 키워주기 위해 살인 현장으로 데려간다.

의자에 묶인 자를 비닐로 씌우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재크 나이프로 목을 따서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갱이라면 거쳐 가야 할 기본 코스처럼 보인다.

겁 대가리를 상실한 보이는 돼지 살 속에 숨겨둔 마약을 씨클로로 옮기는 것쯤은 이제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원래 착한 놈이니 이런 범죄를 재미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죽는 꿈을 꾼다. 괴롭다. 그렇다고 이제 막 손에 익기 시작한 범죄를 멈출 수는 없다. 영화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보이는 못이 박힌 각구목으로 점찍은 자의 얼굴을 찍는다. 그의 손에는 이제 씨클로의 핸들대신 날렵한 권총이 쥐어 진다.

누나와 양조위는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두목은 누나에게 매춘을 시킨다. 순결을 잃은 누나는 자살을 시도하고 두목은 사내를 난도질한다. 지시만 하던 두목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순간이다. 보이는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파란색 페인트를 온 몸에 바른다.

양조위는 스스로 불에 타죽고 소년은 극적으로 살아난다. 교실안의 아이들은 동요를 부른다. 마님의 모자란 아들은 소방차에 치어 죽는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매춘부 누나와 갱 동생은 마주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안다고 할 수 있는 설정은 없다. 다행이다. 만약 소년이 누나의 매춘을 알고 괴로워하거나 누나가 동생의 범죄를 눈치 챘다면 영화는 삼천포로 빠졌을지 모른다.

기묘한 것은 범죄의 총 두목인 마님의 존재다. 인자하게 생긴 중년의 마님은 돈을 챙기지만 범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양조위의 카리스마, 소년의 무표정한 얼굴, 누나의 서늘한 에로티시즘이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트란 안 홍 감독은 씨끌로(원제: Cyclo)로 199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당국은 이 영화가 베트남의 부정적 이미지를 그리고 사회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상영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씨클로를 몬다. 그것이 희망인지 재활인지 속죄인지 구질구질한 가난으로 복귀인지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보고나서 우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여주인공 트란 누 엔케는 트란 안 홍 감독의 부인이다.

국가: 베트남
감독: 트란 안 홍
출연: 레반 록, 양조위, 트란 누 엔케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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