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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적과백(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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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적과백(1967)
  • 의약뉴스
  • 승인 2014.05.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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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본다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당황해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전쟁에서 인간성은 필요 없다.

헝가리의 아름다운 고향마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러시아 혁명군에 가담한 의용군들의 꿈은 확인사살로 무너진다.

죽음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미클로스 얀초 감독의 적과백(영어명: The Red And The White)에서는 죽기 직전의 고통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부상으로 팔 다리가 잘리고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외마디 비명소리 조차 없다.

방아쇠를 당기고 탕하는 소리가 나면 적군이든 백군이든 쓰러지고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 카메라는 총 맞은 자를 더 이상 비추지 않는다. 한 발의 총알에 정확히 한 명이 죽는다. '원 샷, 원 킬' 이다.

조금 전까지 등에 굵은 근육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이 푹 고꾸라지면서 죽는데 이상 하리 만치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헝가리 출신 얀초 감독의 롱테크 화면은 건조하지만 생명력이 있다. 영화는 러시아 혁명 직후 그러니까 ‘피의 일요일’이 일어난 1917년에서 2년이 경과한 시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백군은 정부군이며 적군은 헝가리, 그루지아  등 주변국의 의용군이 가세한 혁명군이다.

무대는 첨탑이 아름다운 성당과 부상병동을 중심으로 백군이 우월한 전투력을 보이는 가운데 진행된다.

백군은 마치 나폴레옹처럼 말에 앉아 징기스칸처럼 칼을 높이 치켜들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온다.

칼을 일자로 세우고 내달리는 장면은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 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칼은 죽은 볼세비키 혁명군에 대한 예를 표할 때 사용된다.)

러시아 혁명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이지만 정작 혁명을 찬양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전쟁의 아픔이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헝가리 포로가 죽기 직전 부르는 노래는 민족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러시아에서 한 때 상영금지 됐다.)

성당을 점령한 정부군은 포로로 잡은 적군들에게 15분간 탈출 시간을 주고 토끼사냥 하듯 포로들을 사냥한다.

강물로 밀어 넣고 노로 찔러 죽인다. 여자의 옷을 모두 벗기고 희롱한다고 해서 정부군을 욕할 필요는 없다. 적군을 지목하지 않는 간호사를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다.

자작나무 숲으로 간호사들을 끌고 가서는 군악대의 음악에 맞춰 신나는 왈츠를 추게 한다고 해서 놀랄 필요도 없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인간성의 괴이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착검한 칼로 쑤시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흰 옷 입은 포로들을 일렬로 뉘어 놓고 권총으로 한 명 한 명 죽이는 장면에서 반전을 생각하면 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대평원에서 무수히 많은 정부군을 상대로 무모하게 도전하는 혁명군은 전멸한다. 영화는 죽는 것이 끝나고 나서야 막을 내린다.  반전영화 중 흑백으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찬양할 만 하다.

국가: 헝가리, 러시아
감독: 미클로스 얀초
출연: 안드라스 코작, 조셉 마다라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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