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131.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상태바
131.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 의약뉴스
  • 승인 2014.04.14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전탑에 올라가는 것이 시위인 요즘과 달리 1980년대는 사랑을 외치는 장소로 쓰였나 보다.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이발소 시다인 춘식(이영호)은 같은 이발소 면도사인 미스 유( 김보연)와 사랑 하는 사이다. 어느 날 춘식은 거침없이 송전탑을 오른다.

그리고 외친다, 미스유(큰 소리로) 사랑해(작은 소리로). 올려다보는 미스유의 시선은 불안하다. 떨어질 듯 위태롭다.

덕배( 안성기)는 중국집 배달원이다. 어울리지 않게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부잣집 따님( 유지인)의 추파를 받는다. 따님은 따로 연애 상대가 있지만 무시하고 덕배와 데이트를 즐긴다. 이 둘의 만남 역시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길남( 김성찬)은 여관 심부름꾼이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미용사 진옥( 조주미)이다. 왕능 에서 만나 석상을 돌며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한다. 시대의 소수자 혹은 마이너인 이들 3명은 젊음을 무기로 각자 위치에서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며 열심히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시기는 개발의 광풍이 불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사회갈등이 고조되는 80년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미래를 꿈꾼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고 결국 바닥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는 것도 날개가 있다고 마냥 떨어지지만은 않는다. 정해진 미래이지만 지금은 꿈을 꾼다.

춘식은 미스유가 부동산 재벌 회장( 최불암)의 노리개로 전락하자 면도칼을 휘두른다. 덕배는 중국집 안주인(박원숙)과 카운터 맨 조씨( 김희라)가 내연관계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한다.

 

춘식의 동생 춘순( 임예진)이 영등포 공장에 취직하러 오자 둘은 가까워진다.

부잣집 따님의 자동차를 타고 시외로 나가기도 한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덕배는 따님의 키스 공세를 받지만 놀림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시무룩하다.

칼을 휘두른 춘삼은 교도소로 가고 진옥에게 맡긴 돈을 뜯긴 길남은 진달래 호텔이 아닌 웰컴 호텔 사장의 꿈을 미루고 입대한다.

홀로 남은 덕배는 맞기만 하면 코피가 터질 것을 알면서도 권투 연습이 맹렬하다.

이장호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 날'(영어명: Good windy day)로 일약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 이전 별들의 고향(1974) 으로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바 있지만 이 영화로 그의 한국 영화사에서의 입지는 완벽해 졌다. (이후 또 하나의 걸작 '바보선언'(1983)을 내놨다.)

질질 짜기만 하는 멜로 영화가 판을 치던 죽었던 한국 영화를 되살려 놨다. 과감하게 시대상을 반영했다.

개발의 열기를 타고 부동산 갑부가 된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과 농토를 뺏긴 지주의 자살 등을 여과 없이 그렸다. (짧았던 서울의 봄 이후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위질의 유혹을 느꼈다. 영자를 부를까, 순자를 부를까 하는 대목에서 '순'자를 뺐다. 당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씨의 부인 이름이 이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영상문화원의 자료에서는 '순'자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들린다.)

영상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의 흐름과 극의 전개는 이 영화가 왜 한국 최고의 영화인지 두말하면 잔소리로 만든다.

특히 안성기(이 영화로 성인배우(국민배우)로 변신에 성공했다.)와 유지인이 이태원( 하얏트 호텔이 보이고 외국인이 드나드는 것으로 보아)의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추는 춤은 명장면으로 길이 기억될 듯싶다.

마이클 잭슨의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에 이은 품바 타령에 맞춰 추는 춤은 압권이다. 춤이 끝나고 두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플로어에 누워 껴안고 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기립을 하고 박수를 치는 것은 이 영화에 보내는 찬사에 다름 아니다.

절정의 감각에 오른 유지인의 거침없는 몸놀림( 짧은 흰 치마와 가슴골이 깊게 드러난 상의를 입고 나왔다. 마치 마릴린 먼로를 연상 시켰다.)과 말더듬이 안성기의 어눌한 행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지금도 건재한 신라호텔, 상성본관 건물(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의) 롯데호텔, 교보빌딩 등 이미 개발된 강북의 고층건물과 막 개발의 삽을 뜨는 강남 역삼동 일대의 공사판에서 벌어지는 세 촌놈의 상경기는 보고 나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지는 기분을 피하기 어렵다.

각본은 당시 수배를 받던 소설가 송기숙이 썼으나 공안을 피하기 위해 이장호로 바꿨다고 한다. 이 감독은 이달(4월) 17일 개봉하는 종교색 짙은 영화 '시선'으로 1995년 '천재선언' 이후 19년 만에 한국관객들과 다시 만난다.

국가: 한국
감독: 이장호
출연: 안성기, 이영호, 김성찬, 유지인, 김보연
평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