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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알제리전투(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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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알제리전투(1966)
  • 의약뉴스
  • 승인 2013.03.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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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학생들은 시체가 되어 일렬로 늘어섰다.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2012)은 실패한 혁명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동참했던 주민들이 막상 전투가 벌어져 쫒기는 반군이 피신을 원하자 모두 문을 닫는다.

이 장면에서 피의 혁명이 좌절될 것을 예감한 사람들이 많다. 주민의 협조 없이는 그 어떤 혁명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는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영화가 여기서 끝났다면 힐링은 커녕 좌절감만 부추겼을 텐데 다행히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다. 다시한번 해보자는 외침에 관객들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과 작은 희망을 품고 극장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알제리 전투’는 혁명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기대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룬 위대한 알제리 민중에 대한 헌사라는 점에서 레미제라블과 조금 닮았다. 시간상으로 보면 레미제라블이 알제리 전투와 닮았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이 영화는 선동적이다. 혁명하라고, 압제자 프랑스에 맞서 싸우라고 주문한다. 아랍 주민들은 뭉치고 단결하고 조직을 키운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하나 둘 체포되고 마지막 남은 지도자마저 폭탄공격으로 죽자 혁명의 불길은 사그러 든다.

주민들이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압도적 화력과 잔인한 프랑스군의 무차별 학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결코 털어 놔서는 안 되는 비밀을 말해놓고 괴로워하는 한 늙은 밀고자의 괴로운 시선으로 부터 시작된다.

심한 고문의 흔적을 숨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밀고자는 진작에 털어놨으면 개고생을 하지 않았는데 험한 꼴을 당했다고 위로인지 비아냥인지를 들으면서 프랑스 공수부대원들을 아랍인 밀집 지역인 카스바로 안내한다.

 

맑은 날의 밤하늘처럼 무수히 많은 희고 네모난 집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의 옥상은 중무장한 얼룩무늬 군인들이 장악했다.

마지막 혁명군 지도자 알리(브레임 하쟈드)는 마티유(쟝 마틴) 대령이 이끄는 부대에 포위돼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 순순히 나오면 정식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는 마티유의 회유는 딱 30초의 여유밖에 없다.

그 30초 동안 은신처에 숨어 공포에 질린 어린 혁명군과 알리를 포함한 마지막 반군은 끝내 버티다 다이너마이트 폭파로 산산조각이 난다.

이로써 삼각형으로 조직된 반군의 지도부는 괴멸되고 알제리 인민해방전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7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 알제리는 꿈에 그리는 자유독립을 쟁취한다.

빈민가의 잡범 출신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일자무식 알리가 혁명군에 가담하면서 최후를 맞는 순간까지를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선동적이며 급진적이고 무자비 하며 학살에는 학살로 맞서는 이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넘은 1998년에서야 겨우 한국에서 개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경찰의 등 뒤를 겨냥하거나 젊은이들이 춤추고 노는 나이트클럽을 폭파하고 공항까지 테러를 일삼는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특수군인인 공수부대와 탱크로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프랑스 군이 나쁜지 숨어서 게릴라 공격으로 지나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기관총을 난사하는 반군이 나쁜지 영화는 어느 쪽이 더 악에 가까운지 편을 들지 않는다.

프랑스군은 반군을 소탕했지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1962년 마침내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쟁취했다. 무수한 작은 별들이 밤하늘을 밝힌 것이다. 알리와 어린 소년병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국가: 이탈리아/ 알제리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출연: 브레힘 하쟈드, 장 마틴, 야세프 샤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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