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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초원의 빛(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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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초원의 빛( 1961)
  • 의약뉴스
  • 승인 201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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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은 시리즈물도 잘 만 만들면 드라마 아닌 영화라도 대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다.

그러나 이들 영화는 모두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것들이다. 1961년에 나온 엘리아 카잔 감독의 초원의 빛을 시리즈물로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증이 인다.

‘서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전편에서 헤어진 두 연인이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2편이 시작된다. 아니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만나기를 청할 수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은 서로 사랑했던 순간보다 더 열렬히 사랑한다. 불륜이지만 로멘스로 부르고 싶을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다. 이같은 결말이라면 영화의 후속작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초원의 빛이 너무 애간장을 녹이기 때문이다. 맺어 지지 못한 버드 (워렌비티 분. 이 영화가 첫 출연이다.)와 월마 디니( 나탈리 우드 분)는 서로 첫사랑이다. (이용주 감독이 만들고 엄태웅 한가인 주연의 우리나라 영화 건축학 개론( 2012)도 첫사랑을 다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치 영화 장면 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폭포수 주변이다. 차안에서 버드는 디니를 넘어뜨리고 거친 키스를 한다.

버드는 넘치는 정욕을 억제하기 힘들어 그 다음 단계인 섹스를 원한다. 그러나 디니는 “안돼, 제발 이러지 마” 하면서 거절한다. 정숙한 여자는 결혼 전에는 섹스를 해서는 안된다는 엄마의 가르침 때문이다.

두 사람은 어긋난다. 예리한 관객이라면 이들의 섹스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섹스를 하지 못한다.

물론 결정적인 기회도 있었다. 버드와 디니는 빈 집에서 정상위 체위로 섹스 직전까지 간다.

그 때 외출한 엄마가 돌아온다. 두 사람은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면서 아쉽게도 섹스를 다음 기회로 미룬다. 파티에서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섹스 기회를 맞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버드는 신경질 적이다. 욕망을 분출하지 못한 남자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디니와 섹스를 못한 버드는 꼭 그래서라기 보다는 어쨋든 디니의 여고 동기생과 섹스를 한다.

이를 눈치챈 학생들이 디니를 보고 수군거린다.

수업시간이다. 디니는 딴 짓을 하다 선생님으로부터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낭송하라는 지적을 받는다. 시를 읆던 디니는 울면서 뛰쳐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어색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다.

예전처럼 손잡고 껴안고 키스하는 것은 데이트 할 때마다 가능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된다. 어머니는 그렇고 그런 관계까지 갔느냐? 는 말로 짜증을 부채질하고 아빠는 주식이 오르는 것만큼 딸의 애정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어긋난다. 버드의 아빠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석유 사업을 물려주려고 한다. 그래서 예일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라지만 버드는 2년제 농경대학을 희망한다.

버드는 농구 경기중 쓰러져 입원하고 디니는 이를 애처롭게 지켜본다. 버드가 낫자 이번에는 디니가 아프다. 그는 정신병원에 1년 6개월간 입원한다. 집에 돌아온 디니는 버드가 결혼해 옛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빠로부터 듣는다.

디니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버드도 마찬가지. 하지만 버드는 웨이트리스와 결혼해 아이를 둔 남의 남자다. 디니는 버드의 아들을 안아준다. 그리고 결혼 사실을 알리고 떠난다. 

   
 

워즈워드 시 초원의 빛 시구가 어른거린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질수록 그대를 향한 마음 희미해 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잊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한 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고 결코 서러워 마라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는 가슴에 품고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며 죽음의 눈빛으로 부수듯 티없는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헤어질 때 두 사람이 굿바이 키스라도 했으면 아쉬움이 덜했을 텐데 이마저도 없다.

관객은 이들을 떼어 놓은 감독이 얄밉다. 그래서 누군가가 후속작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겨우 이마에 피가 마른 상태로 출연한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의 애송이 적 모습을 보는 것은 덤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떨어지고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계층간의 격차, 1928년 켄사스주의 사회모순, 기독교적 억압, 여성의 순결, 부모 자식간의 세대차이, 출세와 경기불황 등은 지금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버드의 누이로 나와 아무 남자와도 자는 지니( 바바라 로든 분)의 역할은 디니와 대조를 보인다.

국가: 미국
감독: 엘리아 카잔
출연: 워렌비티, 나탈리 우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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