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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물랑루즈(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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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물랑루즈(1952)
  • 의약뉴스
  • 승인 201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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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약간 부담스러운 영화가 있다.

시나리오를 잘쓰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의  여주인공 문소리는 몸을 심하게 비틀고 말조차 하기 힘든데 그 장면을 보노라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막막함 때문에 눈길을 주기가 어렵다.

존 휴스턴 감독(1906~1987)의 물랑루즈도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영화는 비장애인이 보는 장애인에 대한 아린 시선이 아니라 36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과 절망에 방점이 맺힌다.

1890년대의 파리 술집 물랑루즈는 캉캉춤을 추는 무희와 한 건을 노리는 사내들로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난장판에 싸움이 빠질 수 없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춤추던 무희들은 어느 새 한데 엉켜 때리고 물고 머리채를 잡고 발로 차고 엎어지고 뒹굴고 술을 얼굴에 끼얹는다.

구석의 한 쪽에 검은 중절모에 안경을 쓴 수염이 덥수룩한 점잖게 생긴 신사가 빈 화선지에 날렵한 솜씨로 이런 풍경을 스케치하는데 열중이다.

관객들은 여기서 남자가 재야의 고수이지만 전통 평단에서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는 화단의 이단아 정도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의 빈곳에 반쯤 먹다 남은 술병이 이런 추측에 확신을 더한다.

청소를 하고 의자가 상위에 올려진 빈 술집에서 마침내 남자가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바쁘지만 나만은 괜찮다는 듯이 아주 천천히 텅빈 밤거리를 걷는다. 이 남자에게 관객들은 놀란다.

왜 놀라는 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남자는 몽마르뜨르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이다. 생전에 화가를 꿈꿨던 휴스턴 감독은 실존인물을 영화로 만들면서 자의식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던지 로트렉의 천재성과 타락, 방탕과 몰락의 길을 시간차로 보여준다.

어느 날 로트렉(호세 페레 분)은 술 취해 집으로 가다 경찰에 쫒기는 거리의 여자 마리를 도와준다. 여자는 남자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 남자는 콧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지난밤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죽하겠는가. 풍만하지만 거칠고 천박한 몸짓과 제멋대로인 말투는 남자를 화나게 하고 급한 성질의 여자는 제 분에 못 이겨 다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거리로 나간다.

무려 11일간 로트렉은 집안에 만 처 박혀 술만 퍼 마신다. 아들의 고민을 들은 어머니는 “가서 그 아이를 찾아라, 술로 치유 못한다, 네 인생은 소중하다”라는 말로 위로한다.

아들은 '미끄러워 제대로 걷지 못하고 악취가 진통하는 먹을 것은 없지만 언제나 술은 넘쳐나는'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마차를 타고 간다. 떠들썩한 술집에서 취한 그녀가 병나발을 불고 있다.

   
 

마리는 집으로 가자는 남자에게 “네가 좋아서 함께 했는 줄 아느냐, 난 병신은 딱 질색이다”라는 모진 말을 거침없이 내 뱉는다. 다시 불 꺼진 집으로 돌아온 그가 할일은 파멸로 이끄는 술을 찾는 것뿐이다.

그가 즐겨 하는 말은 코냑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친근한 단어는 그가 짧고 간결하게 말하는 ‘코냑’이 아닐까. 그는 배신당한 상처를 달래면서 미완성 그림을 마무리 하고 무랑루즈의 포스터를 그리고 전시회를 연다.

로트렉은 이제 파리에서 빈센트 반고흐를 친구로 둘 만큼 유명세를 탄다. 그림은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살만큼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무렵 그는 세느강에서 자살을 시도할 것 같은 또 한명의 여자 마리암을 만난다. 그녀는 “아침의 바람은 차지만 세느강 만큼은 아니다”라는 말로 위로한 로트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그가 그린 마리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여자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 아니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편지를 쓰고 떠난다. 로트렉은 다시 코냑을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거리의 여자 마리에게 1500프랑이라는 거금을 선뜻 줄 만큼 순정파 였던 그는 술로 만신창이가 된 어느 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희미한 시선으로 언제나 백작 가문의 위신만을 생각하는 그래서 아들을 멀리했던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다.

생전의 화가 중 유일하게 루브르 박물관에 그림이 걸린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로트렉의 눈은 딴 곳에 가 있다. 바로 물랑루즈의 술집이다.

다리를 일자로 쭉 위로 뻗으면서 속옷을 보여주는 여자들의 상기된 얼굴, 그 얼굴 하나 하나가 그에게 ‘잘가라, 이젠 안녕’이라고 손짓한다. 죽음으로써 상처받은 영혼이 마침내 위로 받는다.

지금까지 물랑루즈 라는 제목으로 모두 다섯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이 가운데 휴스턴 감독의 무랑루즈와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무랑루즈(2001)는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둘 다 수상에는 실패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로트렉 역을 소화한 호세 페레의 연기가 돋보인다.

제작국가 :영국
감독: 존 휴스턴
출연:호세 페레, 자자 가보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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