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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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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1988)
  • 의약뉴스
  • 승인 2012.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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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을을 떠난 21살의 젊은이와 중년의 택시운전사.

그리고 막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 동유럽 영화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감독( 1941~1996)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그의 십계연작 중 제 5화 ‘살인을 하지 말라’의 극장판이다.

영화는 고층아파트가 늘어선 회색 도시를 배경으로 웅덩이에 빠져 죽은 쥐의 시체 그리고 시체 옆에 떠다니는 종이 쓰레기, 밧줄에 매달린 고양이가 보이는 풍경으로 시작부터 음산하다.

남자들은 각자 나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다 운명의 끈으로 한데 엉킨다.

청 자켓을 입고 오른쪽 어깨에 작은 가방을 둘러맨 야체크 (미로스라브 바카 분)는 이리 저리 도시를 배회하면서 비둘기를 내쫒아 모이를 주는 할머니를 화나게 하고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돌을 아래로 떨어트리고 먹다 남은 빵을 창문에 던지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휘파람을 부는 남자를 밀치기도 한다.

불량끼가 넘쳐흘러 조만간 무슨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이 이어진다.

택시운전사(안테 사르지 분)는 좀 얄밉다.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는 남녀는 외면하고 예쁘고 젊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에게는 타라고 권한다.

애완견을 끌고 가는 행인을 보자 경적을 크게 울려 개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변호사 피토르 (크리지 시토프 글로비즈 분)는 가혹한 처벌의 정당성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끔은 부당한 판결도 있다, 카인 이후 지상에서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등의 소신 발언을 했음에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거리는 여전히 잿빛이다. 경찰이 순찰을 도는 폴란드 바르샤바는 칼라지만 흑백처럼 검은색이 화면을 지배한다.

   

밉살스런 사내가 운전하는 택시에 야체크가 탄다. 으슥한 곳에서 그는 양손에 잡은 밧줄을 운전사의 목에 감고 강하게 당긴다. 운전사는 쉽게 죽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저항은 길고 고통스럽다.

화물열차가 비켜가고 언덕위로 자전거를 탄 남자가 지나가지만 범죄를 막지 못한다.

살인 장면은 매우 잔인하다. 이렇게 까지 죽어야 할 만큼 나쁜 택시 운전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돈, 와이프, 돈을 외치는 아직 살아 있는 남자에게 무려 다섯 번이나 큰 돌을 얼굴에 내리치는 광기는 끔찍하다. 담뇨로 가린 얼굴에 피가 작은 분수 처럼 솟아 오른다.

이 끔찍한 살인의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뒤에 여자에게 찾아가 등산도 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이 살인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이는 카뮈의 ‘이방인’에 빗대 이유 없이 죽이는 부조리의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 있는 이유는 아니다.

붙잡히는 과정은 없다. 재판 장면도 생략된다. 사형이 확정되자 변호사는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는 오열한다. 대신 집행은 자세하고 길게 늘어진다.

교수형을 위해 밧줄과 도르레를 점검하고 죽기 직전의 면담과정도 장황하다. 눈에 검은 안대가 쳐지고 목에 밧줄에 감길 때 죽기 싫다, 살고 싶다는 절규는 그럼 왜 살인했지? 라는 질문으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살인자가 줄로 죽이고 줄로 죽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한 줄기 빛이 섬광처럼 밝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사형제가 과연 합당한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나온 1988년 폴란드는 1941년 히틀러와 스탈린의 침공, 1960~70년대의 공산정권의 핍박을 이겨내고 바웬사 자유노조 위원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기와 비슷하다.)

이후 감독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1991) ‘ 블루(1993) 화이트(1993) 레드(1994)’의 삼색 연작을 만들어 진가를 더욱 높인다.

국가:폴란드
감독: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출연: 미로스라브 바카, 크쥐시토프 글로비즈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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