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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뻐꾸기 둥지위로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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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뻐꾸기 둥지위로 ...(1975)
  • 의약뉴스
  • 승인 2012.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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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은 ‘고향’에서 희망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정신병동에 신규 환자가 들어온다. 이 환자는 절망뿐인 병동에 희망을 불어 넣는다. 새 길을 내고 모든 사람이 같이 걸어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기대는 완고한 고집에 막혀 좌절된다. 희망이 사라진 인간의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희망과 절망, 자유와 억압에 관한 영화다.

불평불만이 많아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위험인물인 38살 맥머피(잭 니콜슨 분)가 어느 날 완고한 간호사 래치드( 루이스 플래처 분)가 있는 철조망이 촘촘히 처진 회색의 정신병동에 수갑을 차고 끌려온다.

그는 병동 환자들 가운데 일부는 길들여져 있을 뿐이지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임을 자각시키기 위해 별별 노력을 벌인다.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기간에는 텔레비전 시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농구 경기를 통해 환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도 한다.

심지어 버스를 탈취해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기도 하고 여자를 끌어 들여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소동을 벌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밉살스럽고 원칙을 지키는 냉정한 간호사(사실 이렇게 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감금과 격리를 통해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서다.)와 일과표대로 움직이는 병원내의 압력 등에 막혀 번번이 실패한다.

그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인디언 추장 브롬덴(윌 샘슨 분 )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뉴스를 들으면서 “ 내보내 주지 않으면 나갈수 없는” 지옥 같은 썪은 병동을 탈출하기로 모의한다.

장애를 가장했던 추장은 처음에는 거부 했지만 나중에는 기꺼이 같이 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맥머피는 예전의 맥머피가 아니다. 숱한 주사와 전기고문으로 제 한 몸 조차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다.

펄펄 날면서 생기를 주던 맥머피가 더 이상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인 것을 안 추장은 슬픔을 억누르면서 그를 살해하고 그가 시도했으나 실패한 세면 도구를 들어 올려 창문을 부수고 병동을 탈출한다.

없는 길을 먼저 가서 내고 그래서 모두 함께 그 길을 가고자 했던 맥머피는 죽고 그 죽음을 딛고 추장은 탈출에 성공한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희망의 영화이면서 자유의 영화이기도 한 까닭이다.

   
▲ 하룻밤 자유를 만끽했으나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온 길들여진 환자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고난한 시대의 시인은 전사이어야 한다고 외쳤던 김남주 시인은 시 자유에서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말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누어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자유라고 할 수 있느냐고 소리 높였다.

맥머피는 자신은 물론 타인을 위해 피와 눈물을 흘리고 끝내 죽음으로써 자유를 연기했다. 133분간의 시간이 지루할 겨늘이 없었던 것은 맥머피의 종횡무진한 활약 때문이다.

영화가 아무리 감독의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잭 니콜슨이 없었다면 감동의 물결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딩 마티니 체스윅 빌리 추장 등의 감칠 맛 나는 조연은 영화에서 배우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증명해 주고 있다.

까탈스러우면서 잔인한 간호사와 능청을 떨지만 정의와 의리가 있는 맥머피의 불꽃튀는 연기대결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한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 등 5개 부분을 석권한 것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잊혀지는 그런 삼류가 아닌 영원한 고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족간의 갈등이나 이해다툼으로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동에 갇히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집에서 회사에서 혹은 길을 가다가, 병원에서 온 직원들에게 납치 당하듯이 차에 실려 정신병동에 끌려가는 만들어지는 산송장이나 ‘미친사람’이 되는 현실은 더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은 이 영화가 주는 덤이다.

정작 미친인간은 양처럼 온순한 머저리를 원하는 허위와 기만에 가득찬 사회라는 통렬한 고발은 ‘유쾌 상쾌 통쾌’하다. 규격화된 통제에 대한 강력한 잽인 것이다.

국가: 미국
감독: 밀로스 포먼
출연: 잭 니콜슨, 루이스 플레처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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