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뜨거운 태양 열사병과 일사병
과거 초등학생 시절에는 매주 월요일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안 나가도 되나 하고 갖은 꾀를 쓰곤 했었다.
어쩔 수 없이 나가기는 하지만 잠시 서 있다가 뜨거운 햇빛에 힘에 겨운 듯 비틀거리면 선생님께선 큰일이나 난 것처럼 황급히 양호실이나 교실에서 쉬게 배려해 주시곤 하셨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선 "일사병인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말하는 일사병은 의학 용어로 따지자면 '열실신'에 해당한다.
앞의 예와 같이 뜨거운 땡볕에 오래 서 있다보면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 열실신(heat syncope)이라고 말한다.
이는 갑자기 고온에 노출되면서 우리 몸의 말초 혈관들이 확장되고 혈액이 주로 다리에 몰리게 되어 대뇌로 가야할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대뇌 허혈 상태가 유도되어 실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고온에 적응되지 못한 사람에서 잘 오는데, 육체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
이때에는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곧바로 회복되는데 다리 쪽을 높게 해 주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주로 고온에서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서 문제가 되는데 한번 적응되고 나면 잘 발생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초여름에 잘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에 진짜 일사병은 흔하지 않은 질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대부분 사망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병적 상태를 말한다. 더위로 인한 질환 중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보통 열사병이라고도 한다.
인체에는 체온유지를 담당하는 체온 중추가 있어 땀을 흘리거나 호흡 등을 통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되는데, 무덥고 다습한 환경에서 격심한 육체노동을 하게 되면 이러한 체온 조절 기능에 장애가 생겨 체온이 40도까지 급상승하는데도 땀이 나지 않아 피부가 마르고 뜨거워지며, 혼수 경련 등도 일으키게 된다.
과도한 더위에 몸의 체온조절 중추가 파업을 일으킨 상태로 보면 된다. 이 때에는 얼음물이나 알코올로 환자피부를 식히는 등 체온을 39도까지 가능한 한 빨리 떨어뜨리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열사병과 유사한 상태로 열탈진이 있는데, 열사병과 증상이 비슷해서 구분이 어려우나 체온이 39도보다 낮아서 그 위험도가 훨씬 적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흔히 더위를 먹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외에도 고온 노출과 관련된 질병에 열경련이 있는데 근육에 경련이 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과도한 운동으로 수분과 염분이 소실되어 발생한다.
주로 축구 선수나 마라톤 선수들이 운동 중에 발생하는 근육의 경련이 이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몇 해 전 미국 달라스에서 있었던 월드컵 경기에서 많은 선수들이 살인적인 더위에 운동 도중 이런 증세가 발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었다.
대부분 1% 소금물이 도움이 되나 심한 경우에는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전에 미리 염분과 포도당이 함유된 음료를 충분히 섭취하고 적당한 스트레칭 운동을 하면 이런 상태를 예방할 수 있다.
일사병이든 열실신이든 최근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 과거 통계를 보면 매년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온 노출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였으나 작년에는 한 주간의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과거의 연간 사망자 수를 훨씬 넘은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온대성 기후의 좋은 자연 환경 덕에 아직까지는 그렇게 염려되는 상황이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기상 이변과 관련된 전 세계적인 피해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런 고온과 관련된 질병은 모두 예방이 가능하다. 특히 열에 취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주의를 기울여 고온 환경에 너무 오래 있지 않도록 하고, 평소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도록 하며 적절한 운동을 통해서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도 여지없이 가마솥 더위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번 여름에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더위를 이겨보면 어떨까?
▶ 자료 : 서울대병원 조비룡 교수
▶ 진료 :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외래 760-3353
이창민 기자(mpman@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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