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아들 둘이 모두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고 그중 큰 아들은 4년전인 30살에 세상을 떳다.
둘째아들은 제 혼자 힘으로는 문 밖 출입을 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근이영양증 환자 부모인 정연심씨(가명)의 가슴은 억장으로 무너진다.
" 속상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건강한 다른 아이들을 쳐다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 하다고 하늘을 원망도 많이 했죠."
이제는 다 옛말이 됐다는 정씨는 둘째 아들 석이(가명ㆍ 30) 가 좀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현재 석이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회사에 다닌다. 대학원까지 마친 재원이다.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것을 사정사정해 일반학교를 마치고 석이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도 정씨의 억척 때문에 가능했다.
석이는 학교 입학 전인 7살까지는 건강했다. 큰 아들이 질병이 있어 병원에서는 검사를 원했지만 그 때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크고 있고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조금 일찍 안다고 해서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8살이 되면서 석이는 자주 넘어졌다. 등교하다가도 넘어지고 계단을 오르다가도 넘어졌다.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피검사(DNA)를 받고 환자로 확진 받았다. 그 이후 석이의 상태는 나날이 나빠졌다.
고등학교 입학 할 때까지는 넘어지면서도 겨우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었지만 그 이후는 주저 앉고 말았다. 말 그대로 근육의 영양이 빠져나가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대학을 마치고 어렷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근이영양증 환자는 일찍 사망하고 예후도 나빴는데 이제는 오래살기도 하고 조절만 잘 하면 걷지 못해서 그렇지 다른 기능등은 왠만큼 할 수 있을 만큼 의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다.
천형이 것이다. 서서히 팔 다리 근육의 힘이 빠지다가 마침내 심장과 폐 근육 마져 소실돼 죽음에 이르는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따라서 병원에서 재활치료만을 강조하는 의사를 만날 경우 조기에 사망 할 수도 있다.
심장과 폐기능 검사를 수시로 해 그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활도 중요하다. 피부가 굳는 것을 풀어주는데 재활치료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는 근본치료는 아니다.
어머니는 유전에 관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대개 유전으로 오는 경우는 30% 밖에 안돼요. 나머지 70%는 돌연변이죠. 결혼 전에 양가 식구들의 가계를 모두 확인했는데 이상한 질병으로 조기에 사망한 경우가 없었죠."
하지만 정씨의 마음 한 구석은 늘 미안함으로 가득차 있다. 남편과 석이에 대한 연민같은 것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냐. 꿈이 아닌 현실인 것을.
근이영양증 환자는 매달 한번씩 서울대의대에 모여 정보도 교환하면서 얼굴을 맞댄다. 동병상린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350명 정도 환우들이 등록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000명 정도의 근이영양증 환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근육병의 일종인 루게릭 등을 제외한 수치다.
함께 다닐상황은 못되고 혹시 홈페이지나 까페를 통해서 볼 수는 없는지요??
같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많은 분들을 대신해서 애쓰시는 협회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통을 같이 나누고 희망또한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