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을 앞두고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를 강조하는 건보공단과 수년간 누적된 저수가 및 최근 의료사태로 인한 경영난 해소를 요구하는 공급자 단체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은 9일 서울가든호텔에서 2026년도 수가협상 관련 이사장-의약단체장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정기석 이사장은 현 건강보험 재정 상황에 대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년 연속 보험료율이 동결되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입 기반이 약화된 가운데, 동일 진단에도 고가 항목으로 행위가 대체되며 급여비 지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비상진료체계 지원과 필수의료 정책 추진에 따른 대규모 건보 재정 투입이 지난해부터 진행돼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이러한 경영 여건 속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이사장은 "재정의 엄중함을 고려하면서도 필수의료 중심으로 수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저평가된 의료행위에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공급자 단체장들은 건보공단이 토로하는 재정적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수십 년간 이어진 저수가 정책과 최근의 의료위기가 공급자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항변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의료 최전선의 절박함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의료사태로 인해 병원협회 등 병원급에서 약 3조 원 이상의 예기치 않은 막대한 재정 지출이 발생했고, 이는 기존의 저수가 체계와 맞물려 의료기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는 이미 폐기된 SGR(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모델을 국내에서 계속 적용하며 의료계를 규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이 결국 저수가 체계에서 비롯된 만큼, 이를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과감한 정책 전환과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병원협회 이성규 회장은 전공의 부재 장기화로 인한 병원계의 복합적인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1년 이상 지속된 전공의의 병원 이탈은 환자 진료 불편을 넘어, 적정 인력 배치 난항, 전문의 고용 부담 가중, 간호인력 업무 과부하 및 급증하는 인건비 등 병원 운영 여건을 최악으로 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가운데 “정부의 의료개혁 및 전달체계 개편 정책은 병원의 기능과 역할 변화를 요구하며 막대한 재정 부담과 불확실성을 동반한다”면서 “작년 말 기준 약 30조 원에 달하는 건보 누적 흑자를 고려할 때, 재정 불안정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할 것이 아니라 의료의 질 향상과 고용 안정을 위해 과감한 재정 투입과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박태근 회장은 치과계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경영난을 역설했다.
그는 “대형 치과의 확산, 일부 덤핑 치과의 시장 교란, 과대 광고 등으로 인해 지역 주민의 구강 건강을 책임져 온 동네 치과들이 생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근 학술대회 주제가 동네 치과 생존 전략, 덤핑치과 근절일 정도로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년간의 수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압박과 현실적인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면서 “치과계의 복잡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수가 정상화가 시급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분야 재정 투입에 치과계 필수의료 분야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은 한의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수가협상을 주문했다.
윤 회장은 “AI 시대에 각종 통계와 지표가 구체화됨에도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하나의 유형으로 묶어 협상하는 것은 문제”라며 “주요 원가 항목별 상승률에서 양 기관 간 차이가 큰 만큼, 내년부터는 반드시 분리 협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촉구했다.
또한 “한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전체 보장률(64.9%)에 비해 현저히 낮은 59.2%에 불과해 환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보장률 단계별 인상 로드맵 마련, 정부 보건의료 정책 시범사업에서 한의 배제 문제 해결, 사법적으로 인정된 한의사의 진단기기 활용에 대한 합리적 급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 권영희 회장은 약국 현장의 고충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장기화된 의약품 품절 문제로 약국은 매일 아침 품절약 확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재고 부담 비용은 고스란히 약국의 몫”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더해 “의료대란 상황 속 91일 이상 장기처방이 급증해 약 품절을 심화시켰고, 처방 건수 감소에도 업무량과 인건비는 증가해 파산 직전의 약국이 다수”라며 “4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인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할 때, 수가협상은 단순 예산 분배가 아닌, 국민에게 필수적인 약료 서비스 제공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대한조산사협회 이순옥 회장은 저출생 위기 속 조산 환경 개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의 제왕절개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며, 현장에서는 90%에 육박한다고 체감한다”며 “이는 자연분만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제왕절개 수가의 영향도 있는 만큼, 일본처럼 수가 격차를 줄여 자연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출산율 저하에 더해 제왕절개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되면서 자연출산 기회가 줄어들어 조산사들의 활동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며 “조산 현장의 지속 가능성과 전문성 인정을 위한 건보공단의 전향적인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