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시도와 의료계의 반발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기저에는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문제의 역사적 고찰-2000년 의약분업~2020년 전공의 파업'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정원 감축에서부터 2020년 젊은 의사들의 총파업으로 귀결된 정부의 증원 시도까지, 갈등의 역사를 되짚었다.

의학한림원에 따르면 정부가 의사 부족 프레임으로 증원을 밀어붙이면, 의료계, 특히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전공의들은 열악한 근무ㆍ수련 환경과 비현실적인 수가부터 개선하라고 맞서는 구도가 20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 같은 갈등의 기저에는 불신이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이다.
의학한림원은 “수십 년간 이어진 대립으로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의사 인력 추계 통계의 신뢰성 문제도 있는데, 사용하는 방법론과 활동 의사 같은 기본 개념 정의조차 합의되지 않아, 정부와 의료계는 각자 입맛에 맞는 통계를 들이밀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의학한림원은 2000년대 이후 젊은 의사들, 즉 전공의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선 배경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히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을 넘어, 자신들이 처한 열악한 수련 환경과 왜곡된 의료 시스템, 그리고 때로는 분열하는 기성 의료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련 환경 개선에 나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 변수라는 것.
특히 한림원은 공공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했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내세우지만, 정작 의료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민간 의료기관과의 관계 설정이나 정부의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않고서는 정책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의학한림원은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해결책을 제안했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지방ㆍ필수의료 분야의 근무 환경개선과 수가 인상 등 의료 현장의 급한 불을 꺼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기적으로는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소통과 점진적 합의 노력 ▲과학적이고 투명하며 합의 가능한 통계 기준 마련 ▲전공의를 포함한 다양한 의료계 주체들의 의견 수렴 및 수련환경 개선 로드맵 제시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논의 ▲정치적 입김과 직역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 논의ㆍ결정 기구 설립 검토 등을 제시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공공성의 개념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합의 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이 장기적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