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법 기반 급여기준 발목, 기존 약제까지 비급여 전환...업체간 조율도 ‘위법’
[의약뉴스]
암 환자와 가족이 더 나은 세상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바야흐로 항암 병용요법의 시대.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유지해 온 요법 기반 항암제 급여 기준에 한계가 도래하고 있다.
병용요법이 항암 신약 허가 사례 중 과반을 넘어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처럼 건건이 심사하며 하나씩 급여의 문을 열어 가는 방식으로 신약 개발의 발전 속도를 따르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17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암학회 및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주관해 개최한 ‘병용요법의 암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현행 항암제 급여 등재 틀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 관계자 역시 한계를 인정하며 조만간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행 요법 기반 급여 기준의 틀 안에서는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항암제 병용요법의 시대...허가ㆍ개발 항암 요법 중 70% 이상이 병용요법
과거 항암화학요법은 전신독성항암제라는 별칭처럼 부작용이 심해 주로 암세포가 전신으로 전이돼 수술이나 방사선 등 근치적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표적치료제를 시작으로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부작용을 크게 줄인 항암제들이 줄지어 등장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전보다 앞단에서 보다 다양한 항암제를 동시에 투약해 항암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가능해진 것.
특히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기능을 활용해 부작용의 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다양한 암종에서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 이제는 항암 치료의 백본(Back-bone)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2제, 3제를 넘어 최근에는 4제 병용요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합이 등장해 기존 항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해가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김인호 교수에 따르면, 미국 FDA에 승인된 항암제 관련 임상연구 중 병용요법의 비중은 2007년 30%에서 지난 2021년에는 약 80%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5년간 허가된 항암신약 중 75%가 병용요법으로,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병용요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기간 허가된 항암 병용요법 중 절반은 신약간 병용요법, 나머지 절반은 기존 허가 항암제와 신약간 병용요법으로 다양한 조합이 등장하고 있다.
◇항암 병용요법, 암 환자 생존율 개선에 기여
지난 2023년, 유럽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회의(ESMO 2023) 플레너라 세션은 이 같은 트렌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지난 30여년간 항암화학요법에 의존해왔던 전이성 요로상피암 1차 치료에서 동시에 두 가지 병용요법이 등장, 1년 여에 불과하던 기대 여명을 끌어올린 것.
각각 기존의 항암화학요법에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추가한 CheckMate 901 3상 임상과 항암화학요법을 배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항체약물접합체 파드셉을 조합한 EV-302/KEYNOTE-A39 연구로, 특히 키트루다와 파드셉 조합은 요로상피암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두 배 이상 연장해 현장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전 세계 종양학자들이 환호하던 그 순간, 같은 현장에 있던 한국의 교수들은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기 쉽지 않은 조합이라는 자조 섞인 웃음이다.
◇급여 등재 항암제에 비급여 신약 추가하면 모두 비급여 전환
현재 우리나라의 항암제 급여 기준 상 병용요법 등재의 난제는 크게 ▲기존 급여 등재 의약품과 비급여 신약의 조합, ▲비급여 신약간 조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기존 급여 등재 의약품과 비급여 신약의 조합은 임상 현장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사례로 꼽힌다.
현행 항암제 급여는 요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기존에 급여를 인정받던 항암제라 하더라도 비급여 신약을 조합하면 둘 모두 급여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
환자가 기존 등재 의약품보다 더 나은 치료 성적에 대한 기대로 비급여 신약에 대한 지불 의사가 있더라도 기존 의약품까지 비급여로 전환되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돼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앞서 ESMO 2023에서 주목을 받았던 옵디보+항암화학 병용요법 역시 같은 사례로, 최근에는 위암에서 빌로이가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 유방암에서 퍼제타와 허셉틴 병용요법, 담도암에서 임핀지와 항암화학 병용요법 등 학회의 거듭된 요청에 기존 등재 품목에는 급여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외국에 비해 신약이 허가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건건이 심사해서는 쏟아지는 항암 병용요법의 접근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소한 기존의 등재 품목에 대해서는 신약과 병용하더라도 급여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이해관계 얽힌 신약 간 병용요법, 난제도 수두룩
기존 등재 의약과 신약 간 병용요법과 달리 신약간 병용요법의 셈법은 더욱 복잡하다.
특히 최근에는 면역항암제가 항암치료의 백본으로 자리를 잡아 복수의 회사가 관계되는 경우가 더욱 늘고 있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한 회사가 관련 약제를 모두 보유한 경우에는 협상 테이블을 좁힐 수 있지만, 복수의 회사가 관계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어느 한 회사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급여 등재에 소극적인 경우, 다른 회사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더라도 결과물을 얻어내기란 요원하다.
관련된 회사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더라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경제성 평가, 재정 영향 분석 등 협의 과정이 자칫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인정될 수 있어 사실상 업체간 조율도 불가능하다.
ESMO 2023에서 전 세계 종양학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국제 표준으로 자리잡은 키트루다와 파드셉 병용요법이 같은 이유로 급여 등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요료상피암 못지 않게 치료 성적이 좋지 않은 신장암에서도 이미 수년 전 옵디보와 카보메틱스가 생존율을 크게 개선했지만, 국내에서 급여 등재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자로 나서 관련 회사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한 회사라도 적극적이라면 해당 약제만 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이라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기존 등재 의약품 급여 유지, ICER 탄력 적용 필요”
항암제 병용요법이 쏟아지고 있어 이제 더 이상 각개 격파로는 대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에 정책토론회의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서동철 명예교수는 ▲이해 관계자간 협력 모델 구축 ▲새로운 가격 책정 및 급여 적용 체계 개발 ▲ICER 임계값의 탄력 적용 ▲기존 치료제와 추가 치료제의 가치 배분 모델 개발 ▲실제 임상 근거(Real-World Data)를 활용한 선등재 후평가 등을 제언했다.
병용요법에 합당한 가격ㆍ급여 책정 모델과 담합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제조사간 협력 모델, 나아가 항암제 치료 펀드 등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업계를 대표해 패널로 참석한 암젠코리아 김민지 이사 역시 병용요법에 대한 ICER 입계 값 탄력 적용을 주문했다.
병용요법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생명 연장에 따른 투약기간 증가를 고려하면 현재의 ICER 임계값을 만족하기는 어렵다는 것.
여기에 더해 비급여 신약의 허가 시 기존 등재 의약품의 급여 유지와 더불어 병용요법 관련 업체가 복수일 경우 암질심 내 재정분담안 협의를 생략하는 방안을 제언했다.
급여 검토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암질심 이후 관련 업체들이 재정영향 및 상한액에 대해 협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 가운데 급여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회사가 있다면 관련 약제는 전액 본인부담으로 설정하고, 다른 회사의 약제에 대해서는 급여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복지부ㆍ심평원 “개선방안 내놓겠다”
정부 관계자로 토론회에 참가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박희연 사무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김국희 실장 역시 현장의 목소리에 공감한다는 뜻을 전했다.
현재 다방면으로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조만간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
박희연 사무관은 “국민 여러분들이 피해를 보시지 않도록 제도를 검토 중”이라며 “유관 부서와 논의해 암 환자분들과 가족분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자녀분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국희 실장은 “다양한 요법이 쏟아지면서 현재의 급여 관리가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있다”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항암제가) 워낙 많아서 전부다 급여를 적용할 수 있는가, 또 급여를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의 ICER 임계값이 낮다고 하시지만,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면서 “탄력 적용에 있어서도 비용과 생존기간이 반영되기 떄문에 병용요법의 비용이 더 든다해서 ICER를 탄력적용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을 보장하는 현재의 급여기준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가, 앞으로 병용요법, 더 고가의 항암제간 나올텐데 별도의 제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면서 “심평원보다 더 상위 단계에서 미래를 대비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기회의 창은 열어야
토론회를 주최한 이주영 의원은 여러가지 고민이 있겠지만,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의원은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로, 이 나무가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정부의 잎장에서는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전체 숲을 봐야 하는 고민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약가를 너무 낮추려다 보니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에 “환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을 때에는 어느 정도 기회의 창이 열려 있어야 있다”면서 “하나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모두를 잃어버린다”고 당부했다.
좌장으로 토론회를 진행한 대한암학회 라선영 이사장(연세암병원)은 “학회에서 데이터를 보고 환자에게 주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승인이 되더라도 급여가 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약이 많이 나와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이 길어졌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도도 쫓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견을 모았으면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오늘 이 자리가 중요한 모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