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2024년은 의료계에 있어 역사에 기록할 만한 수많은 사건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정초부터 시작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로 촉발된 의ㆍ정 갈등은 의료대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병원과 학교를 떠났다.
이 가운데 의협은 제41대 이필수 회장이 사퇴하고, 임현택 신임 회장은 취임 1년도 채우우지 못하고 불신임을 당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간호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됐고, 상급종합병원의 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최종안이 확정되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동안 의료계를 덮친 여러 사건들을 살펴봤다.
◆의대 정원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로 인한 의료대란

2024년 의료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고 혼란스러웠다.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 계획과 함게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의ㆍ정 갈등이 시작됐고, 이는 의료대란이라는 위기를 불러왔다.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하자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던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했고,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정부에 맞섰다.
이에 정부는 병원에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하고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을 허용하지 않는 등 강경하게 맞서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행정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전공의들은 증원을 백지화하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ㆍ정갈등의 여파는 의료계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에도 미쳤는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가 나온 직후 제41대 이필수 회장이 사퇴했고,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 김택우 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회장 선거를 통해 제42대 임현택 회장이 선출됐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6개월만에 불신임을 당하면서 의협 대의원회 박형욱 부의장을 위원장으로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는 등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특히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의 부작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정국까지 맞물려 악화일로를 겪는 모습이다.
올 한해 사회 전반을 흔든 의정갈등이 내년에는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을 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

올해 최대 사건을 꼽으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이후 이어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꼽을 것이다.
지난 12월 3일 22시 23분경 윤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계엄사령부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의 계엄사 통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의 48시간 내 본업 복귀 및 미복귀 처단 등의 내용을 담은 제1호 포고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여ㆍ야 의원들이 군ㆍ경의 제지를 뚫고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켜 계엄령을 무효화했다.
이후 대통령실이 국무회의 의결로 계엄해제를 선포하면서 계엄령은 6시간 만에 완전히 종료됐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포고령에 포함된 '전공의 및 의료인 48시간 내 미복귀 처단'에 반발, 이에 대한 사과와 작성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43대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5명을 비롯해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와 대한의학회, 각 지역의사회, 각과 의사회, 의대교수단체들에서도 대통령의 계엄령ㆍ포고령을 의료계엄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했고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계엄령 이후 국회는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195명이 참여해 전체 인원의 2/3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국민들은 이에 크게 공분하면서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를 실시,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시작됐으며 여의도에만 약 100만명(주최측 추산, 경찰추산 16만)의 인파가 모였다.
그 다음주인 12월 14일 국회는 재발의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고, 재석 300명 중 204명(반대 75명, 기권 3명, 무효 8명)이 찬성, 가결됐다.
탄핵소추안 통과로 윤 대통령은 직무는 정지됐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만이 남은 상황이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의료개혁이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이미 발표한 지역ㆍ필수의료 강화 대책들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선언, 의ㆍ정 갈등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임현택 당선과 짧은 임기, 그리고 탄핵

의협 제41대 회장인 이필수 회장이 사퇴한 이후, 의협은 곧바로 제42대 회장 선거를 진행했다.
결선투표까지 치열하게 진행된 선거 끝에 임현택 회장이 제42대 회장에 당선됐다.
취임 일성으로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라는 정부의 의료농단을 죽을 각오로 막아내겠다”고 선언한 임 회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임기는 고작 6개월에 그치고 말았다.
의대 정원 증원 등으로 시작된 의ㆍ정 갈등 상황에서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젊은 의사들을 이끄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박단 위원장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임 회장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의협 집행부가 전공의 7대 요구안이나 의대생 8대 요구안이 있음에도 집단휴진 여부와 관련한 세 가지 요구안을 내놨는데, 이로 인해 투쟁의 전면에 나선 전공의와 의대생이 의협 집행부, 특히 임 회장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임 회장이 지역의사회와 협의되지 않은 무기한 휴진 카드를 꺼내면서, 지역의사회와의 갈등까지 표면화됐다.
이에 더해 임 회장이 과거 SNS에 올린 과격한 발언과 실언들이 조명되면서 의협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간호법이 통과되자 임 회장의 리더십을 질타하는 여론은 더욱 격해졌다.
이로 인해 임기 6개월도 되지 않은 지난 8월 비대위 구성을 위한 임시대의원총회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성급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서울시의사회 최주현 홍보이사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합의금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SNS 계정을 스스로 삭제하고 두 차례에 걸쳐 회원과 대의원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등 자세를 낮췄지만 그동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임 회장은 지난달 의협 100년 역사상 2번째로 불신임을 당하며 임기 반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결국 제정된 간호법, 나아갈 방향은?

지난 8월 간호계의 숙원인 간호법이 재석 290명 가운데 283명의 찬성(반대 2명, 기권 5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내년 6월 20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지난 상반기만 해도 간호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은 불확실했다.
지난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며 법제화 가능성을 높였으나, 의료체계 악화를 우려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법제화를 막았고, 이후 국회에서 재의표결이 이뤄졌지만, 끝내 부결돼 폐기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이탈로 의료백이 발생, 간호법이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정부의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가운데 92%가 수련병원 복귀를 거부, 전공의 업무 상당 부분을 PA간호사가 떠맡고 있어 이들의 의료행위가 제도권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 것.
지난달 대한간호협회는 전국 5000여명의 간호사와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간호법 제정을 축하는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안이 공포된 것에 대해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과 사회적 돌봄의 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며 “간호법이 만들어져 간호사가 해도 되는 직무와 하지 말아야 할 직무가 명확해져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의료계 직역간 갈등이 여실히 드러났고 의사와 간호사 간의 업무 범위와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간호법 시행 6개월을 앞둔 현재까지도 법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간호법 시행에 따라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복지부의 보고서로는 진행상황이 파악되지 않는다”며 “상종구조전환에 따라 수도권 기준으로 대학병원 2~3개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간호법 제정의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나와야 하는데 (복지부의 답변은) ‘초안 마련 중이다’ ‘구체적 의견 검토 중이다’ 등으로, 준비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최종안 확정

지난 9월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최종안을 확정했다.
이후 12월 6일 기준 총 44개 상급종합병원이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전국 상급종합병원이 47개임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상급종합병원이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동네 병ㆍ의원과 종합병원의 의료의 질을 그대로 두고 상급종합병원 행을 막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의대생과 전공의가 학교와 수련병원을 떠난 상태로, 내년 신규의사와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아 최소 2~3년은 이대로 가야 하는데, 과연 남은 인력이 버틸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