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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의사 설명의무 판결, 사각지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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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의사 설명의무 판결, 사각지대 존재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4.02.19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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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교수, 의료법학회 발표...규정 및 가이드라인 통해 불확실성 개선 필요

[의약뉴스] 최근 미성년자에 대한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져, 의료현장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이에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 추정 규정 및 가이드라인을 통해 의사의 불확실성을 줄여, 설명의무에 대한 실무 관행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혜진 부교수는 최근 대한의료법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의사결정능력 있는 미성년자 환자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라는 발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 미성년자에 대한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 추정 규정 및 가이드라인을 통해 설명의무에 대한 실무 관행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 미성년자에 대한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 추정 규정 및 가이드라인을 통해 설명의무에 대한 실무 관행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근 대법원은 미성년자에게도 ‘설명의무가 필요하다’는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을 살펴보면, 지난 2016년 6월경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인 A씨는 모 병원에 내원, 뇌 MRI 검사를 받은 결과, 모야모야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A씨는 같은 달 C대학병원에 내원해 모야모야병의 수술적 치료를 받기로 하고, 이에 앞서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 받았는데, 당시 A씨의 부모인 B씨에게만 조영술에 관해 설명하고 시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문제는 A씨가 뇌혈관 조영술이 끝난 후, 입술이 실룩거리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보였다는 것. 이에 C대학병원 의료진은 뇌 MRI 검사를 진행, 좌측 중대뇌동맥에 급성 뇌경색 소견을 보여 중환자실로 옮겨 집중치료를 시행했다.

A씨는 간접 우회로 조성술을 받은 후, 퇴원했으나 영구적인 우측 편마비, 언어기능 저하 등의 후유장애가 남게 된 상황이다. 

시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미성년자인 A씨에게 이 사건 조영술 시행과정이나 시행 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당시 대법원은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 설명하더라도 미성년자에 전달되지 않아 의료행위 결정과 시행에서 미성년자의 의사가 배제될 것이 명백한 경우나 미성년자 환자가 의료행위에 대해 적극 거부의사를 보이는 경우처럼 의사는 미성년자 환자에게 의료행위 관해 설명하고 승낙을 받을 필요가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의사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 대한 설명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직접 의료행위를 설명해야 한다”라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박혜진 교수는 “환자에게 보장되는 자기결정권은 자기결정능력 또는 동의능력을 갖춘 미성년자인 환자에게도 인정된다”며 “대법원 판결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판결로,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 환자에게 ‘직접’ 설명할 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해당 판결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의 이행 방식을 원칙적으로 ‘간접적 설명’ 즉 친권자 또는 법정대리인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했다”며 “미성년자의 부모에게 설명한 의사는 부모에게 설명하고 동의서에 받은 서명을 가지고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증명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환자에게 내용이 적절히 전달됐는지, 미성년자인 환자가 동의했는지를 확인하는 걸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대법원 판결은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에 대한 설명의무를, 친권자 또는 법정대리인을 통해 전달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직접 설명하는 방식을 예외적으로 하고 있다”며 “의사가 미성년자에게 직접 설명하기 위해선 미성년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있고,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는 두 단계 요건을 부과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별한 사정은 ‘부모가 의사의 설명을 전달하지 않는 것’과 ‘미성년인 환자가 의료행위에 대해 적극 거부 의사를 보일 것’으로 제시했다”며 “이 두 경우 모두 의사가 알기 어려워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이러한 법리 구성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실무관행’에 있다는 것.

박 교수는 “미성년자인 환자가 부모와 함께 설명을 듣거나 부모로부터 전달받았어도, 동의서는 부모에게 서명을 받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려운 사안에서도 의사의 증명곤란을 이용, 위자료 청구 승소 사례가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미성년자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부담을 의사에게 과도하게 지우지 않으려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미성년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기존 실무관행을 변화시킬 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판결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에 박 교수는 미성년자의 의사결정과 관련, 주요 국가에선 법률 및 가이드라인으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는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단독으로 할 수 있고, 의심스러운 경우 15세 이상의 미성년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의 존재가 추정된다.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된 경우, 보호 및 양육에 관한 법정대리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민법에 규정하고 있다.

법령에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의료전문가집단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경우도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의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미성년을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된 미성년 ▲능력이 계발되고 있는 중인 미성년자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로 구분하고, 각 분류에 따라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법령에서 연령을 기준으로 한 추정 규정, 가이드라인을 통한 판단기준 제시, 평가도구 사용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임상에서 의사가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나 방법이 확립돼야 실무 관행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간 학설상으로 논의됐던 의사결정능력 있는 미성년자 환자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를 정면으로 다룬 첫 판결”이라며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미성년자인 환자에게도 의사는 설명의무를 부담한다고 선언했고, 설명의무를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 환자에게 직접 설명해야 하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미성년자 환자에 대해 의사가 설명의무를 부담한다면 환자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며 “다만 법령에서 연령을 기준으로 한 추정 규정, 가이드라인을 통한 판단기준 제시, 평가도구 사용 등 방안을 통해 미성년자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는 의사의 불확실성과 부담을 줄여야 의료법 취지에 맞는 실무 관행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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