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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송서 인과관계 증명 완화, 의료기피 발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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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송서 인과관계 증명 완화, 의료기피 발생 우려"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3.12.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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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호 재판연구관 "선진국일수록... 민사 손해배상으로 분쟁 해결"

[의약뉴스] 의료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증명이 부족함에도 법원이 이를 회피해 형사책임을 쉽게 인정해버리면 의료인의 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해당 의료분야를 기피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한의료법학회와 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는 최근 대법원에서 ‘의료소송에서의 인과관계 및 설명의무에 대한 최근의 논의’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대법원 문현호 재판연구관은 ‘의료과오 사건에서 인과관계 증명에 관한 최신 대법원 판결’이란 발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 문현호 재판연구관은 최근 대한의료법학회-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가 주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의료과오 사건에서 인과관계 증명에 관한 최신 대법원 판결’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 문현호 재판연구관은 최근 대한의료법학회-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가 주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의료과오 사건에서 인과관계 증명에 관한 최신 대법원 판결’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지난 8월 대법원에선 의료과오 사건에서 인과관계 증명에 관한 판결이 내려졌다.

해당 사건을 살펴보면, 환자 A씨는 지난 2015년 12월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넘어진 후 팔을 올릴 수 없어 B병원에 입원했다. B 병원 의료진은 MRI 검사 등을 거쳐 '오른쪽 어깨 전층 회전근개파열과 어깨충돌 증후군 소견'으로 진단한 뒤, A씨에 대한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당일, 병원 소속 마취과 전문의는 A씨를 전신마취한 뒤 간호사에게 상태를 지켜보도록 지시한 후 수술실에서 나왔다. A씨는 전신마취 후 수차례 혈압상승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저혈압 증상이 반복되다가 결국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마취과 전문의는 간호사의 호출에도 신속히 수술실로 가지 않는 등 업무를 소홀히 했고, 심정지 상태인 A씨를 중환자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심폐소생술과 앰부배깅(수동식 산소 공급)을 시행하지 않는 등으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유족들은 병원 의료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대법원은 병원에 진료상 과실이 명백히 존재하고 해당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추정해 유죄로 판단한 1ㆍ2심 재판부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에서는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백히 증명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문현호 연구관은 “의료소송에서 주요 쟁점은 의료과실과 인과관계이고, 기본적으로 환자 측에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며 “의료과실의 경우, 사실관계에 다툼이 없으면서 의료진의 행위를 잘못으로 평가할 것인지 또는 의무의 존재가 문제가 되는 경우, 잘못으로 평가되는 사실이 존재하는지가 쟁점이 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어 “앞선 경우는 의학지식 습득에 어려움이 있어도 증명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뒤의 경우는 증명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가장 증명이 어려운 부분은 인과관계로, 이는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진 모두 증명이 어렵다”고 전했다.

또 “대법원 판례에서 의료소송의 증명을 완화하는 법리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간접사실에 의해 인과관계에 있는 과실을 사실상 추정하는 방법, 과실이 증명된 경우에 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일정한 요건 하에 추정하는 방법”이라며 “과실이 증명된 경우, 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일정한 요건하에 추정하는 방법은 1995년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효시로 확립된 법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경우, 과실까지 추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환자측에서 과실을 증명해야 한다”며 “의료행위 이전에 실제 방생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의료상 과실을 추정할 수 없고, 그에 관한 증명 책임이 의사에게 전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련 대법원 판결 문구가 애매해 실제 적용에 논란이 많다는 게 문 연구관의 설명이다.

해당 판결 이후, ‘의사의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에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되,그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또 시인되고 있는 의학상식을 뜻하므로,진료환경과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판시, 의사의 주의의무는 통상의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왔다.

문 연구관은 “해당 판례법리는 의사의 주의의무의 기준과는 별개로 과실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려는 입장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견해에 따르면, 환자 측이 의료행위 가운데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증명한 경우, 그것이 전문성의 관점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고 합리적인 행위임을 의사 측에서 반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은, ‘의료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지 않더라도, ‘의료행위’와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면, 의료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있다”며 “판결에 따르면, 나쁜 결과와 ‘의료과실’의 인과관계를 나쁜 결과와 ‘의료행위’ 인과관계로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문 연구관은 해당 판결의 법리상 문제점으로 법리문언을 충족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판결이 사용한 ‘일반적ㆍ상식적 수준에서의 과실’은 미국서 인정되는 Common knowledge와 Res Ipsa Loquitur(The thing speaks for itself 라는 의미의 라틴어) 등의 원칙에서 기본정신을 유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실제 의료소송에서 일반인의 상식만으로 과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Common knowledge와 Res Ipsa Loquitur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과실 증명 완화 필요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반인 수준에서도 명백한 과실의 경우 증명책임을 완화할 필요성이 거의 없고, 오히려 ‘일반인 기준’을 쉽게 사용해 의학지식과 동떨어진 과실을 인정하면, 판결에 대한 불신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문 연구관의 설명이다.

문 연구관은 법원 실무에선 대법원 판결의 문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례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반인의 상식상 과실이 인정되는 사안이 아닌, 감정에 의해 판단가능한 경과실에서 적용하고 있거나 진단상 과실, 경과관찰 소홀 등에 기인한 치료 지연 등 소극적, 부작위 사안에서도 적용하고 있다”며 “진단상 과실, 경과관찰 소홀 등에 기인한 치료 지연 등 소극적, 부작위 사안에서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 중 적극적으로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경우보다 주로 경과관찰소홀 등 소극적으로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며 “건강상 결함이 있는 경우 등 타원인 개입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문 연구관은 법원이 인과관계 판단을 회피, 형사책임을 쉽게 인정하면, 의료인의 주의를 강화시키는 것보다 해당 의료분야 기피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의료과실로 인한 기소(업무상과실치사상죄) 건수는 연평균 750건 이상으로 매일 2명이 기소되고 있다”며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의료행위 관련 의사에 대한 기소율, 유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의료과실 형사사건에서 합리적 의심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던 하급심 실무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과오사건의 과도한 형사처벌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영역을 기피하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며 “전공의 기피현상이 오래된 흉부외과 등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음에도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전공의 기피현상은 경제적 이유보단 의료과오 책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과도한 형사처벌은 의료진으로 하여금 방어적 의료행위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이 민사사건에서 의료과실을 인정하고 합의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등으로 다수 환자들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법원이 인과관계 판단을 회피해 형사책임을 쉽게 인정하는 경우, 해당 의료분야 기피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문 연구관은 “선진국일수록 형사처벌보다는 민사 손해배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있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민사소송에서 과도한 책임제한 역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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