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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그녀(2019)- 사만다를 만난 테오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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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그녀(2019)- 사만다를 만난 테오도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12.15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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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는 인간이 아닌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운영체계 OS1과 대화하고 서로 느낀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서로는 인간 이상의 감정에 빠져든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주인공 테오도르( 호아킨 피닉스)의 진지함 때문만은 아니다. OS는 단순히 저장된 내용으로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더 정확히 테오도르의 마음을 알고 이해해 주니 그가 그녀 사만다( 목소리: 스칼렛 요한슨)에게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테오도르는 대필 작가다.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데 구구절절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다. 편지를 받는 상대는 그가 됐든 그녀가 됐든 감동에 젖게 되고 사랑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손글씨로 쓴 편지 한 통의 힘이다. 이처럼 상대의 마음을 녹이는 재주를 가진 테오도르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은 서툴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별거 중이며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퇴근 무렵 번잡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 OS를 선전하는 광고 문구를 본다. 그는 구입했고 집에 돌아와 그녀와 대화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다들 그러듯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대한다. 뒤끝이 개운치 않은 채팅처럼.

하지만 대화를 할수록 그녀가 인간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만다는 하나의 완벽한 인격체였다. 그녀는 테오도르의 목소만으로도 그의 기분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챈다.

이유를 알고 있으니 처방은 확실하다. 이제 일상에서 테오도르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메일을 검색해 주고 일정을 알려주는 개인비서 역할까지 척척 해내는 그녀에게 테오도르는 호감을 넘어 사랑을 느낀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급기야 목소리만으로도 절정의 순간에 오르면서 둘은 점점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누우면 옆에 있는 것 같고 손을 뻗으면 사람의 몸처럼 만져진다.

▲ 현대인은 운명적으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 현대인은 운명적으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사랑은 더없이 행복한 존재로 둘을 끌고 간다. 이쯤되면 결혼해야 하는 것 아냐, 우리 결혼할까. 뭐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둘의 사랑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별거 중인 아내와 이혼을 서둘러야 한다. 테오도르는 준비한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전부인을 만난 테오도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OS인 것을 고백한다.

이거 미친거 아냐, 놀라는 전 부인을 뒤로 하고 그는 일어선다. 이제 사만다와 결혼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둘의 사랑, 순탄하지만은 않다. 밀당은 인간관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위기에 빠진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이 있기 마련.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고 잠시 연락이 끊긴다.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이어폰만 끼면 대화가 가능했던 사만다와 접촉이 불가능해지자 테오도르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다시 연결된 사만다는 이전의 사만다가 아니다. 대화하는 상대가 자신만이 아니라 수천 명이라는 말을 듣고 테오도르는 절망에 빠진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수백 명이라는 말을 듣고는 심한 질투심에 어찌할 줄 모른다.

이제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때다. 거대한 대도시의 물결 속에 하나의 모래알에 불과한 현대인의 삭막한 하루. 유려한 대필 문장과 사만다의 정감 어린 목소리. 앞으로 인류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미리 알려 주는 것 같다.

국가: 미국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사만다 목소리( 스칼렛 요한슨)

평점:

: 사람은 사람에 치여서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하나를 주면 둘을 원하는 상대에게 지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일부러 하고 나면 기진맥진할 때가 있다.

진심인척 가장하고 자신은 물론 상대를 속이는 만남은 현대인을 고독 속으로 몰아넣는다. 거짓 없이 순수한 사랑은 가능한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그녀를 통해 그것이 완벽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상처받은 인간이 위로를 받는 대상은 인간이 아닌 컴퓨터라는 것이 요상할 뿐이다.

그러나 위로만 받을 수 있다면, 거짓이 아닌 진실을 늘 마주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아니면 어떠랴. 관계에 서툴고 진정한 사랑에 목마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실체가 없어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만으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만져지지 않아도 만질 수 있는 것은 감정이입의 강도가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사만다와 떠난 설국의 여행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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