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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흔적없는 삶(2017)- 나무위 이층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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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흔적없는 삶(2017)- 나무위 이층집을 꿈꾸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7.28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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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사람이 사람과 떨어져 살 수 있을까. 아버지 윌( 벤 포스터)은 그렇다. 그러나 딸 톰(토마신 맥켄지)은 그럴수 없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데브라 그래닉 감독은 <흔적 없는 삶>에서 이상하게도 이들 두 부녀의 사연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사는 삶을 따라갈 뿐이다. 관객들은 답답하다. 속 시원히 왜 그런지 이유를 밝혀 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이 없다. 수년째 아버지와 십 대의 딸은 숲에서 산다. 성냥 대신 칼로 마른 나무를 잘라 비벼대면 불꽃이 일어난다. 마치 원시인의 삶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생인류다. 어쩌다 이들은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에서 이렇게 살아갈까.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있다. 슬쩍 스쳐 가는 듯한 신문기사의 이라크 전쟁 전우들이 연달아 자살한다는. 그리고 헬기 소리.

아버지는 이라크 전쟁에서 싸운 전사다. 어느 전선에서 얼마 동안 싸웠는지는 모른다. 적을 얼마나 죽이고 옆에서 죽는 아군을 얼마나 지켜봤는지도 모른다. 전투 장면이나 그것을 회상하면서 몸부림치면 모습도 없다.

다만 건장한 그의 체격 그리고 팔뚝 어깨 등에 새겨진 강인한 문신 등으로 보아 아버지는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거나 험악한 일들을 당했고 그런 것들을 보아왔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전쟁 트라우마.

이런 경우 대개의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의 과거를 중간중간 끼워 넣기 마련이다. 전투 장면,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는 장면, 부상 그리고 옆에서 죽은 전우, 바로 앞에서 적을 사살하는 장면 뭐, 전쟁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것은 현실에서는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나 영화로는 재미 혹은 어떤 메시지 전달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문명의 시대에, 먹고 사는 것이 흔한 이 현생인류에게 저것은 그저 싸구려 미친 짓처럼 보인다.

트라우마가 심하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도 제대 후 처음에는 그런 과정을 거쳤을 터. (약을 사고 파는 장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저히 견뎌낼 수 없고 떨쳐 낼 수 없다.그래서 딸을 데리로 산 속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없다. 없는 이유 역시 나와 있지 않지만 각자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먹고 자고 싸는 일이 모두 불편하다. 생존을 위협할 정도다. 빗물을 받아먹고 이슬 머금은 이끼를 짜서 먹는다. 사춘기 딸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파리채로 가볍게 죽는 파리목숨처럼 사람 목숨을 다뤘던 군인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톰에게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딸은 묵묵히 아빠를 따른다.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가 잘 못 될 수 있다는 그래서 아버지 곁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감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 관객들은 딸이 불쌍하다. 감독은 굳이 딸을 아버지와 함께 있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관객들 가운데 일부는 억지로 짜 맞춘 것이니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만 볼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구는 화면 구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쉽게 느낀다. 빠르지 않고 느려도 뭔가 있을 것 같아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야구의 구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처럼. 묘한 이끌림은 갈수록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처럼 단순한 영화를 끝까지 보다니. 그래서 소감은. 그러기를 잘했다는 한 줄 평으로 요약될 만하다.

좋은 영화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버지 윌처럼. 영화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아버지와 딸이 산 속에서 어떻게 머물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일이다. 전쟁의 복기처럼 영화의 복기도 필요한 법.

아버지는 산에서 내려와 다른 사람과 섞이면서 전쟁의 광기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길을 갔다. 딸은 사람과 섞이지 않다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갔다.

▲ 아버지와 딸은 헤어졌으나 나무위에 지은 이층집에서 같이 살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자.
▲ 아버지와 딸은 헤어졌으나 나무위에 지은 이층집에서 같이 살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자.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자. 어느 날 부녀는 숲속 깊은 곳까지 온 벌목꾼에게 흔적을 들킨다. 이어 사냥개를 동원한 현지 경찰이 들이닥치고 시설에 넘겨진 부녀는 이런저런 심문을 받는다.

아버지는 괴롭다. 누가 뭘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는데 수백 개의 항목이 있는 설문에 답해야 한다. 다행히 당국은 이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이 살았던 곳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안내한다.

집이 있다. 이제 물 걱정 추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뜻한 음식과 푹신한 침대. 아버지는 크리스마스트리 벌목 작업에 투입된다. 잘린 나무를 옮기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 아버지는 귀를 막는다.

둘은 다시 짐을 챙긴다. 이번에도 딸은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날은 춥고 산속에는 눈이 내렸다. 이러다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 동사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야전에서 갈고 닦은 아버지의 기지로 딸은 얼어죽지 않는다.

아버지는 식량을 구하러 마을로 떠나고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톰은 찾아 나선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이웃은 당국처럼 친절하다. 둘을 사랑으로 대한다. 아버지의 상처는 의무병으로 제대한 군인이 치료한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을 안다. 동병상린이다.)

좋다.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음식도 풍부하다. 옷도 깨끗이 갈아입고 이웃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저녁에는 불을 피워 놓고 둥글게 앉아 서로를 보면서 대화를 한다. 딸은 이런 삶이 마음에 든다.

여기서 살고 싶어. 난 여기가 마음에 들어. 그러나 아버지는 아니다. 공포를 이겨낼 수 없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짐승처럼 지내야 한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 안착이나 정주는 아버지 삶이 아니다.

또 떠나야 한다. 딸은 아버지를 따라가다 걸음을 멈춘다. 아버지는 뒤돌아본다. 톰은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 아버지에게 건넨다. 둘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본다. 딸은 캠핑카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딸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

국가: 미국

감독: 데브라 그래닉

출연: 벤 포스터, 토마신 맥켄지

평점:

: 영화를 보고 나니 뉴스에서는 록키산맥에서 고립 생활을 하던 일가족이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무엇이 그들을 그리로 내몰았을까. 세상에 어떤 것이 그들에 환멸을 주어 인간을 등지게 만들었을까.

혹시 주인공처럼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오고야 말 아버지와 딸의 조마조마한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둘은 사이좋게 헤어졌다. 이런 헤어짐은 다시 만날 때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올까.

아버지는 가끔 딸이 있는 캠핑 장을 남몰래 찾아올지 모른다. 먼 발치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딸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흡족해할 것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나무에 식량을 매달아 놓는다.

전쟁의 트라우마는 이처럼 질긴 것이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감독은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각오를 가슴 깊숙이 새기고 있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아버지의 행동을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말자.

그에게는 그의 삶이 있고 또 다른 삶은 그의 몫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끝내 전쟁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딸이 만든 나무 위 이층집에서 사는 정도까지는 회복될 수 있다. 그런 날이 부녀에게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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