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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아호, 나의 아들(2019)-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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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아호, 나의 아들(2019)-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6.14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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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벌써 나와 있지 않은가.) 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이며 어머니의 아들인데 여기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중심이다. 아버지(진이문)는 운전학원의 강사다. 성실하다.

아버지를 닮은 큰아들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모범생이다. 아버지의 자랑거리다. 모범생이 있다면 불량학생도 있기 마련이다. 둘째 아들 아호(무건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아버지를 닮지 않아 근심 덩어리인 아호가 사고를 친다. ( 정해진 수순이다.)

오토바이를 훔친다. 빗길을 질주한다. 팽행한 긴장감. ( 이러다 일 터지지.)자신을 괴롭히는 오뎅을 혼내기 위해 친구와 함께 칼을 들고 주방으로 난입한다. 순식간에 오뎅의 손은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경우 재건수술 불가능하다. 차라리 똥통 속에 있었다면 가능했을 수도.)겁만 주려고 했는데 친구가 실제로 자른 것이다.

잔혹한 범죄가 있었으니 그에 따른 벌이 기다린다. 재판정. 아버지는 판사 앞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으라고 아들을 저주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아버지는 무시한다.) 아호는 3년 형기 중 그 반을 살고 석방된다.

앞서 형은 모범생이라고 했다. 그런 형이 자살했다. (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 혼란이 있었을 터. 안따깝다.)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동생은 형의 장례식에 수갑 찬 손으로 조문을 온다. ( 형은 죽기전에 동생을 면회왔다. 배가 부른 제수씨가 될 사람과 함께.) 슬픔이 아니 복받칠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임신한 여자 친구가 눈에 밟힌다. 부모보다는 부풀어 오른 배 안의 자식이 더 걱정이다. 어린 아호는 아버지가 된다. 교도소에서 아호와 소녀는 결혼식을 올린다. (소녀쪽에서는 이모가 참석한다. 신부쪽도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다.) 그리고 드디어 석방이다.

사마광은 말했다.(사마광은 북송시대의 정치가이면서 역사학자로 군신간의 의를 밝힌 자치통감을 썼다.) 자신에게 엄격한 자는 잘못될 경우가 적다고. 세상에 나온 아들은 그 말을 잘 따른다. 여러 유혹이 있지만 잘 버텨낸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아버지의 책무를 따른다. 세차장에서 3년을 버텼다.

▲ 성실한 아버지는 모범행 형과는 다른 사고뭉치 둘째 아들이 감옥에서 평생 썩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짜 그런 마음이었을까.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 성실한 아버지는 모범행 형과는 다른 사고뭉치 둘째 아들이 감옥에서 평생 썩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짜 그런 마음이었을까.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그 사이 5년 복역한 친구가 나온다. 관객들은 그가 마음잡고 일하는 아호의 방해꾼이 될 것을 짐작한다. 그 짐작은 틀리지 않고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는 아호에게 범행을 지시한다. 거절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아호는 총을 든다. ( 아버지의 회상에 따르면 키가 작고 마른 자의 행적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다. 아버지는 아들을 범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으나 독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친구에게 빚이 있다면 이 일로 완전히 청산한 것으로 믿는 아호. 그러나 친구는 아니다. 또 범행을 제의한다. 늦은 오후 문 닫은 세차장에 들이닥친다. ( 아호가 잘 닦은 고급차 안에서 담배를 핀다. 아호는 죽을 맛이다.) 그리고 가자, 범행현장으로. 아들은 또 따른다. 정말로 이번이 최후라는 심정으로. 정말 마지막일까.

관객들은 초조하다. 아버지는 오죽할까. 아버지는 아들이 세차장에서 일하는 수고로움을 차 안에서 몰래 지켜보면서 아들을 이해한다. 내 아들, 불쌍한 내 아들. 마음잡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저렇게 고생하는데 친구가 다시 나쁜 길로 내몰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 친구를 돈으로 회유한다. 그러나 친구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런 친구를 그대로 둘 수 없다. 내 아들을 다시 감옥에 보낼 수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협박해 벤틀리를 몰고 가는 친구를 미행한다.

그리고 아들이 범행 심부름을 하러 간 사이 친구를 해치운다. ( 차로 밀었다고 아내에게 실토했으나 범행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잔혹한 장면은 손가락 자르는 장면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시체를 유기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아들은 친구를 부르지만 없다. 그는 혼자 범행 현장을 떠나 여느 때처럼 차를 닦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건달 패거리들에게 납치당한다. 그가 받아온 가방에는 거액이 들어있다. 아들은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건달들은 배달 사고를 내지 않은 것에 만족하면서 그에게 얼마를 떼주고는 그를 도롯가에 버리고 떠난다. ( 건달들에게 얻어 맞았지만 그것이 대순가. 괴롭히는 친구도 없고 돈도 생겼다. 달리자, 달려 나가자. 아마도 그의 발길질이 이처럼 활기찬 적은 없었을 것이다.) 

건달들은 아호를 풀어주기 전에 말한다. 네 친구는 이제 너를 괴롭힐 수 없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맞아 죽었거든. 몇 주 전에. 환호성을 질러야 하지만 아호의 표정은 전과 같다.

괴롭히는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해방이지만 한 때 동지적 관계였던 친구와 영영 작별을 그런 표정으로 달랬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감독은 아호의 무표정을 그런 것과 연결 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친구의 출소 후 아호는 단 한번도 친구를 이해한 적이 없다.) 

국가: 대만

감독: 청몽홍

출연: 진이문, 무건화

평점:

: 강사 일을 할 때 누군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식은 있나요? 아들 한 명입니다. 큰아들이 죽기 전의 말이다. 죽은 후에 또 같은 질문을 받는다. 아들 하나에요. 그 전의 대답은 거짓이었으나 이후의 대답은 진실이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이제 아호만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아호를 아들로 받아들였다. 판사 앞에서 엄벌을 요구했던 그런 아비는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아버지의 범행은 완전범죄로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그때까지 치우지 않았던 죽은 아들의 방을 엄마는 정리한다. 아호가 그 일을 돕는다. 가족은 큰아들과 형을 온전히 보냈다. 작별의식은 끝났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순간을 잡고 정한 길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면 되돌아오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두운 항아리에 숨을 수 없다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럴 수 없는 미숙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무시하는 대신 마땅히 해를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로 안내해야 한다. 성장할 때까지는 말이다. 

아호는 자기 길을 찾았다. 스스로든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든 그는 이제 범죄의 소굴로 다시 들어갈 일은 없다. 홀가분한 아호가 어릴 적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길을 달린다.

좀 길다 싶은 영화지만 지루할 새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진지한 가족 영화다. 화면이나 대사나 연기나 스토리가 좋다. 수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한편 오뎅 아버지가 똥차를 끌고와 똥물을 뿌리는 장면은 사족으로 넣을 만큼 '웃기는 오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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