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래 보다 늦어서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질병이 원인이라면 가슴은 더욱 아리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간혹 일어나는 일이다.
“ 태경이가 꼭 3살 때 였어요. 걷기는 걷는데 곧잘 넘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죠. 걷는 게 서투르니 조금 지나면 낫겠다고 여겼죠. 질병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태경의 어머니 허금자씨는 태경이가 아프기 시작하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변에서는 뭔가 이상한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금자씨도 넘어지는 모습이 보통과는 다르다고 판단해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다.
소아신경과 의사는 처음에는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토콘트리아근명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종 검사를 마친 후 4살 때 리씨 증후군 확진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생명이 짧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태경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떤 때는 상태가 호전되다가 또 어떤 때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야할 정도로 악화됐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런 세월이 지속됐다.
현재 태경이는 6학년이다. 지능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다. 읽거나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삐뚤거리게 쓰는 글씨 때문에 알아보는데 애를 먹는다. 밥을 스스로 먹거나 옷을 입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무척 느리다.
손발은 매우 작다. 유치원생 정도 크기다. 21 센티미터 짜리 신발을 신는다. 키는 130 센티미터가 안 되지만 몸무게는 41 킬로그람이나 나간다. 비대한 편이다. 혼자 화장실을 가기는 하지만 어렵다. 부축하거나 벽을 짚어야만 일어설 수 있다. 학교는 휠체어를 타고 간다.
다행히 학교 친구들이 잘 이해해줘 왕따 같은 놀림은 받지 않는다. 태경이는 텔레비전에도 나왔다. 그래서 친구들이 태경이의 상태를 알고 도와주려고 한다. 어머니 금자씨는 “ 친구들이 고맙다” 고 말했다.
금자씨는 태경이에게 왜 이런 질병이 왔는지 전혀 짐작 가는 곳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가계나 아빠 가계에서 의심할 만한 유전적 요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임신 중에 아빠 건강이 나빠 유산시킬까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아빠는 안면근육마비가 와 지금도 상태가 안좋다.
“임신 28주인 상태에서 유산을 고려했어요.” 어떤 한의원에서는 이런 산모의 힘든 심리상태 때문에 태경이의 건강이 안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으나 신빙성 있는 진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약도 없기 때문에 특별히 치료받는 것은 없다. 4살 때 진단 받고 난 후 가족들은 모두 기독교인이 됐다. 아플 때나 기쁠 때나 신의 힘을 빌려 위안을 삼고 있다.
<사진2>성민(13)이와 민정(11)이는 상태가 더욱 나쁘다. 잘 놀다가 어느 날부터 인가 발 뒤굼치를 들고 다녔다. 그것이 성민이 병의 시초였다. 백병원에 가니 리씨 증후군으로 진단을 내렸다. 하루 12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주사제를 경구용으로 복용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빠만 질뿐이다. 지금은 보행도 이상이 있고 말도 어눌하다. 언어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한달에 30만원 하는 비용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민정이는 글씨를 참 예쁘게 썼다.
남매 어머니는 “민정이가 글씨를 잘 쓰다가 어느 순간 이상하게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는 등 각종 검사를 받았다. 소아과 채종희 교수는 팀원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후 리씨로 판정했다. 현재 이들 남매는 뒤뚱거리며 걷는다.
성민이 남매와 어머니는 얼마 전 어린이 날에 한 방송국에서 초청해 개그 생방송 현장을 찾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의 행복 뿐이었다. 현재 이 아이들의 치료법은 없다. 아이들은 유전자 검사를 받았으나 발병 원인의 특이점은 찾지 못했다.
남매가 다니는 유현초교 특수반 주해영 교사는 “ 성민이와 민정이가 호전되기 보다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 안타깝다” 고 말했다. 주 교사는 “ 연필을 잡는 게 힘들고 A4 용지에 글을 써도 제대로 읽어 볼 수 없고 지능은 있지만 주관식 시험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가슴 아프다” 고 걱정했다.
그는 “ 과거보다 정부 지원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다” 며“ 소외되고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많은 지원이 있기를 바란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서울대병원 소아신경과 황용승 교수( 어린이병원장)는 “ 효소 사슬의 결핍 등 유전적 요인에 의한 발병 원인이 일부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 유전자 치료 등을 기대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며 “ 상황이 악화되면 그에 따른 대증요법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참고로 미토콘트리아(사구체) 질환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울대병원 소아과 채종희 교수는 현재 미국에 연수 중에 있다. 국내에는 8월 말 쯤 귀국할 예정이다.)
*리씨증후군(Leigh disease): 다른 희귀질환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언어 운동 지능 등이 점차 퇴화해 종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세포내 유전자(미토콘트리아) 결함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나타날 때 마다 보존적 치료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다. 국내에는 100여명 이내의 환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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