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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밀양(2007)-용서와 구원은 인간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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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밀양(2007)-용서와 구원은 인간의 몫인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2.13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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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음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나오는 신애(전도연)에게는 이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 비지스의 ‘투 머치 헤븐’, 레드재플린의 ‘스테어 웨이 투 헤븐’, 브라이언 아담스의 헤븐. 공교롭게도 ‘헤븐’이 있다. 의미없이 그냥 헤븐을 반복하다보면 천국에 도달할지 모를 일이다. 그곳에서는 지상의 고통 따위는 없을 테니까.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 때 누구도 그 고통을 대신해 주지 못할 때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하나님 대신 믿어보자는 의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갑자기 그런 음악들이 떠올랐다. 

한편 신애는 조금 어설픈데가 있다. 피아노 학원 개업떡을 돌리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애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거나 생판 모르는 옷가게에 들어가서는 인테리어를 바꾸라고 훈수를 두거나 돈이 있어 땅을 좀 사야겠다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떠벌이는 등.

비록 현실을 도피해 보려는 행동일지라도 이것은 후에 일어날 비극에 작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서울에서 온 낯선 과부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면 밀양 바닥에서는 소문이 곧 죄다 퍼지기 마련이다.

어린 아들 준이 다니는, 인간이 먼저라던 웅변학원장의 귀에도 이 소문이 안 들어갔을 리 없다. 그런 어느 날 아들 준은 납치된다. 죽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 밀양이니 어디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칠 곳이 없다.

카센터 주인(송강호)이 주변을 맴돌지만 아들 잃은 어미의 마음을 달래 주기는커녕 저런 인간에게 무슨 도움을 바랄까, 신애가 보기에 그는 영 시답지 않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마수처럼 신애에게 뻗친다.

길 잃은 어린 양들아, 주님의 품으로 오라.

그는 교회로 간다. 성경책을 선물로 준 약사 부인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실의에 빠진 신애는 십자가의 품에 안겼다.

하나님을 안 그날 이후 신애는 달라졌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확 변했다. 하나님의 힘은 이처럼 위대하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보기에 신수가 훤하다.

행복하다고, 지금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는 그녀 얼굴에 천사가 내려앉았다. 그는 자신의 행복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신의 품에 안겨보라고 전도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양손을 허리 위로 들고 상체를 흔들면서 성경을 부를 때 그녀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무아지경이다. '내 기도에 응답했으니 당신의 기도에도 분명히 응답할 지어다.'

신애가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종교는 이런 때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할 때 신이 내민 손을 잡은 신애는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문득 그는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찢여 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용서를 빌어주고 싶어요.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 도연이 차를 고치는 강호를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장난 차가 매개체가 됐다.
▲ 도연이 차를 고치는 강호를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장난 차가 매개체가 됐다.

카센터 사장의 말은 모처럼 진지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신애의 행동을 되돌릴 수 없다. 신애는 면회 가는 길에 이런 생각했을 것이다.

중형을 받은 살인자는 심한 괴로움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를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식 잃은 어미가 용서해 준다. 그러면 그의 남은 인생도 나처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손에는 마침 볕이 좋은 가을이라 보라색 들국화도 들려있다. 그러나 신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살인자는 평온하다. 얼굴은 화색이 돌고 마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예수처럼 빛나는 얼굴에 심지어 인자하기까지 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사랑 평화 감사 행복 용서 구원 등 온갖 좋은말 대잔치다. 

신애는 놀란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살인자가 어떻게 저런 여유 있는 온화한 표정으로 하나님의 말을 쏟아낼 수 있지. 이유는 곧 밝혀졌다. 그가 말한다.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하나님이 나의 살인을 용서해 줬다고. 그러니 나는 죄 사람을 받은 인간, 죄 없는 인간이라고. 죄가 없는데 살인 때문에 몸부림칠 이유가 없다고.

신애는 무너지고 마침내 까무러친다. 내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할 수가 있지. 신애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

교회가 가증스럽다. 목사의 설교에 김추자의 노래를 끼워 넣는다. 하나님의 사랑 어쩌고저쩌고하는데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가 울려 퍼진다. 다 거짓말이다. 하나님도 교회도 십자가도 목사도 성경도 다 거짓말이다.

자해를 한다, 토한다. 아들의 환청이 들린다. 전화기를 붙잡고 납치자에게 애걸한다. 카센터 사장은 그런 신애가 안쓰럽다 못해 애처롭다. 다방 여자에게 수작을 걸고 혼자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 부르던 허풍선이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하루가 계속해서 진지해 지고 있다. 삶은, 달걀이 아니라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이 된다. 카센터 사장이 변해갈 때 신애도 변한다. 머리를 자르고 싶다.

무언가 자신이 변하려고 엄청난 결심을 할 때는 생이빨을 뽑는 대신 머리를 자르는 것이 좋다. 하필 들어간 곳이 살인자의 딸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곳이다.

신애는 자르다 말고 나온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온다. 지명처럼 밀양에 미친 태양이 아니라 따뜻한 볕이 들었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맞은 편에 있는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다듬는다. 그때 카센터 사장이 온다. 대신 거울을 들어준다. 다시 사람만이 답인가? 그런가?

국가: 한국

감독: 이창동

출연: 전도연, 송강호

평점:

: 사람만이 희망이다. 구원은 신이 아닌 사람이 한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신이 아닌 사람의 몫이다. 피해자가 ‘이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 용서가 된다.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이 대신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면 반기독교적인 영화라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되레 그 반대 일 수 있다. 신애가 입만 열면 하나님을 외치는 장로 약사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너도 그거 하고 싶으냐고 묻는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섹스 코드는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처럼 보였다.

쓰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신애의 고통을 감히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로의 음악을 앞서 꺼낸 것이다.

전도연은 이 영화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아 칸의 여왕이 됐다. 송강호는 전도연의 연기가 빛나게 해 준 일등공신이 됐다.( 그도 <브로커>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서 열 편을 꼽으라면 꼽힐 영화다.

참고로 밀양에는 ‘밀양사람 약산 김원봉’ 말고도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한 표충사가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그야말로 명당에 자리 잡고 있어 밀양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다. 그곳에서 신애의 영혼을 빌어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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