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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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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
  • 의약뉴스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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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 전국시대, ‘초’나라의 한 청년이 양자강을 건너는 배를 타고 가다가 손에 들고 있던 보도(寶刀)를 강물에 떨어뜨렸다. 망연자실(茫然自失), 뱃전 아래를 바라보던 청년은 갑자기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어 보도가 강물에 떨어지는 순간 스쳐 지나간 뱃전에 ▼표를 했다.

이윽고 배가 강 건너 나루터에 닿자 청년은 옷을 벗어 던진 후 자신이 표시한 뱃전 밑으로 잠수했다. 한참 후 물위로 머리를 내민 청년은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분명히 ▼표한 밑으로 빠졌는데 ---.”

그러나 뱃전에 ▼표를 했다고 해서 바다 한가운데 빠진 칼이 나루터 밑 물 속에 있을 리가 없다. 이처럼 각주구검은 세상 물정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으며, 완고하며, 어리석은 행동을 빗대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는 ‘제 털을 뽑아 제자리에 꽂는 재주밖에 없는 위인’이란 말이 있다.

며칠 전,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신인 수혈론’을 발표한바 있다. 이것은 굳이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전문성과 기능성을 갖춘 인재, 나이와 무관하며, 정치를 모를지라도 기성 정치인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실과 미래를 읽는 비전과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대접하여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그 반대로 ‘기성 정치인론’은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적당히 거짓 공약도 내걸고, 임기 웅변도 능해야 하고, 사기도 칠 줄 아는 통이 큰 사람이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칫 동감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시민들에게 가장 신뢰감을 주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某 시의원은 정치와 거리가 먼 교사 출신이며 그 외에도 선비 이상으로 순수하고 전문성을 지닌 의원들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인천대 김학준 총장의 ‘좁쌀영감 식(式) 국정 운영을’이란 글을 읽고 동감하는 바가 많았다. 그 내용인즉, 우리나라 남자들은 좁쌀영감이란 호칭보다는 ‘호탕하고 통이 크다’는 말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주머니가 비고 끼니를 굶으면서도 너털웃음을 짓는 허영심도 이제는 자제하고 좁쌀영감이 되어 나라와 가정의 살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어느 천문학자가 우주 천체를 상상하면서 걷다가 길에 난 작은 구덩이에 빠진 이솝 이야기는 세계화와 국제화만 부르짖다가 IMF 경제 난국의 수렁에 빠진 우리의 처지를 조롱하는 듯 하다.

정책 입안과 시행에 실명제를 도입하여 무한대 책임을 지운다면 예산 한푼, 대출 한푼도 선심을 펑펑 쓰기보다 내 주머니 돈처럼 아끼는 좁쌀영감이 되어 두 번 다시 나라 살림을 말아먹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각구주검에 등장하는 청년의 행동이 과장된 면은 있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 시대에는 각주구검형 정치인과 좁쌀영감형 정치인이 절실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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