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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아티스트(2012)- 선셋 대로의 노마와 조지의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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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아티스트(2012)- 선셋 대로의 노마와 조지의 동병상련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9.1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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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아티스트>를 얼마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다른 영화가 생각났다.

화면을 정지시키고 그 영화를 떠올렸으나 제목이 가물가물했다. 뚜렷한 것은 늙은 여배우가 2층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장면이었다.

맞다.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50년에 만든 <선셋 대로>였다. 놀라고 기쁜 표정의 여주인공은 노마역의 글로리아 스완슨이었다.

무성영화 시절 그녀는 대배우였다. 그러다가 테크니컬 컬러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녀는 한물간 여배우로 순식간에 전락했다. 그녀는 파멸했다.

사진 기자들이 몰려든 것은 그녀가 직접 쓴 각본으로 만든 영화 홍보 자리가 아니었다. 연예부 기자가 아닌 끔찍한 사건 현장을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들이었던 것.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찬사를 보낸 기억을 소환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70년이 지나 나온 이 영화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남자로, 비극이 희극으로 전개되는 것을 빼고는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배우가 유성영화 시대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엇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는 점이 유사했다.

조지(장 뒤자르댕)는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배우였다. 과거형은 쓴 것은 현재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춤과 동작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그를 대적할 배우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말이 없어도 손짓, 발 짓과 표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구시대는 신시대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말 있는 영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무렵 페피(베레니스 메조)가 신인 여배우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어떤 운명을 감지한다. 현실에서는 길고 아득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영화에서는 한두 장면만으로도 두 사람이 강하게 엮일 것을 암시한다.

복도에서 얼굴을 맞대고 분장실에서 남자의 옷에 묻은 체취를 맞는 그녀는 벌써 사랑에 빠졌다. 파트너를 바꿔 춤을 출 때면 그와 짝이 되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황홀경에 빠진다.

다음날 신문에는 두 사람이 엉켜있는 장면이 크게 실렸다. 집에 돌아온 조지에게 부인은 신문을 들이밀며 누구냐고 따진다. 이때 까지만 해도 어떤 식드로든 조지가 살아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제작자는 그에게 무성영화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한다. 대중은 신선한 새 얼굴을 원하는데 결코 틀린 적이 없다는 것. 조지는 이제 찾는 사람이 없다.

▲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배우였던 조지가 신인 여배우 페피와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배우였던 조지가 신인 여배우 페피와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반면 페피는 승승장구한다. 극과 극의 상황이 연출된다. 두 사람은 뒤바뀐 운명이다. 하나는 최고에서 절벽으로 다른 하나는 입구에서 산정에 올라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조지는 화를 낸다. 아직도 스타인 줄 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난 독립하겠다. 내가 영화를 만들겠다.'

호언 장담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조지. 과연 그의 앞길에 무슨 일이 펼쳐질까. 그가 기를 쓸수록 안간힘을 다할수록 그는 점점 수렁으로 깊이 빠져든다.

무려 68일 만에 영화는 완성됐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은행 대출을 받고 빚은 쌓여만 간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이 도래했다. 1929년의 미국은 을씨년스러웠다.

영화가 성공했다면 그는 파산을 면할 수 있었을 테지만 영화는 쪽박을 찬다. 같은 날 개봉한 그녀 주연의 영화는 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진의 연속이다.

조지의 부인은 불행하다. 그녀는 ‘헤어질 결심’을 이때쯤 했을 것이다. 조지는 술을 먹는다. 옆자리의 그녀와 기자와 제작자들은 한마디씩 떠든다.

금붕어처럼 입만 벌리는 배우는 한물갔다. 일부러 들으라고 했는지 아닌지 조지는 그 말을 듣고는 입맛이 쓰다. 아니 죽을 지경이다.

집으로 돌아온 조지는 예전에 그가 출연했던 화려했던 시절의 영화 필름을 모두 불태운다. 그리고 연기 속에 쓰러진다. 병원에 입원한 조지에게 페피가 찾아온다.

국가: 프랑스, 미국

감독: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출연: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메조

평점:

: <선셋 대로>의 노마에게는 페피와 같은 연인이 없었다. 가구며 골동품이며 자신이 환하게 웃는 그림을 경매에 넘길 때 페피는 그의 곁에 있었다. 손을 들어 그의 작품 전부를 구매했다.

그가 웃을 때도 울 때도 언제나 그 옆에 있었던 페피가 없었다면 조지 역시 늙은 노마와 같이 불행했을 터.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하나.

늙었다고는 하지만 조지가 말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조지는 철저히 외면받았을까. 유성 시대라 해도 조지 같은 춤꾼과 표정 연기의 달인이 새 시대가 왔다는 한마디로 사라질 수는 없는데. 얼굴을 따지는 여배우가 아닌데도.

어쨌든 일반인들은 그 깊은 내막과 속사정을 모른다. 사족으로 2012년 12월 23일자 의약뉴스에 나온 <선셋 대로>의 일부를 옮겨본다.

“정점에 있다가 물러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작은 단체의 장도 손이 떨릴 정도로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대중의 스타였다가 잊혀진 존재로 전락한 여배우라면 감히 상상이 가겠는가. 무성영화 시대의 대배우 노마 데스먼드는 테크니컬 컬러가 유행하는 시대에 한물간 노배우로 취급받는다. 들어오는 배역도 없고 언론은 관심조차 안 둔다. 이 배우의 쓸쓸한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축이다.”

어쨌든 영화는 구시대가 신시대에 자리를 뺏기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 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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