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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잠수종과 나비(2007)- 갇힌 몸 열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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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잠수종과 나비(2007)- 갇힌 몸 열린 세계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6.01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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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나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잠시 가던 길 멈춰서서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꿀을 빨거나 아니면 창공을 날거나 잠시 쉬거나 짝을 찾거나 아무튼 하는 짓이 보기에 신난다.

그래서 나비를 구경한 날은 영혼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마침 지금은 나비가 제철이다. 불현듯 나비가 들어간 영화가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잠수종과 나비>를 떠올렸다.

좋은 영화지만 보고 나서 가라앉을까 봐 망설이다가 더 늦기 전에 뒤로 미뤄둔 것을 꺼내 들었을 때 되레 마음은 들떴다. 잠수종을 벗고 날개만 남았다. 그러니 몸과 마음은 이미 나비다.

실제 인물이기도 한 장도미니크 보비(마티유 아말릭)의 인생길을 따라가면 마침내 나비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보비는 유명인사다. 엘르 편집장으로 잘 나간다. 돈과 명예와 사랑이 넘쳐난다.

남이 부러워할 재능을 갖고 타고난 덕분이다. 아이도 셋이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의 엄마 셀린느( 엠마누엘 자이그너)와는 같이 살지 않는다. 그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다.

어느 날 그는 여자 대신 아들과 함께 새로 산 멋진 차를 몰고 연극을 보러 간다. 그 길은 아름답고 초원은 온통 푸르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비극이 찾아온다. 갑작스럽게 보비가 쓰러진다. 뇌졸중이다. 모든 신체 기관은 마비됐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 한 순간에 감옥에 갇혔다. 다만 왼쪽 눈만은 살아서 반응한다. 빛을 따라 움직이고 지시에 따라 깜박인다.

모든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깊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천국이 아닌 지옥.

▲ 알파벳 숫자를 말하면 눈을 깜박여 의사 소통을 하는 주인공의 인생이 가냘프다.
▲ 알파벳 숫자를 말하면 눈을 깜박여 의사 소통을 하는 주인공의 인생이 가냘프다.

하필, 내가 왜? 같은 물음이 꼬리를 물고 그는 생의 끈을 놓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동공이 말라 버린 한쪽 눈은 꿰매졌고 입술은 비뚤어져 흉측한 얼굴이다. 휠체어에 앉은 그를 보는 그는 처참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꿔 먹는다. 바다 깊이 잠수하기 위해 입는 종 모양의 잠수종에서 벗어나 나비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몸은 망가졌어도 정신은 가둘 수 없다.

그는 생각하고 또 기억한다. 좋았던 시절은 수시로 병원과 휠체어와 의사와 그를 돕는 언어치료사와 교차한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안타까움에 작은 탄성을 뱉어낸다.

과연 그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무슨 일이라도 벌일 기세다.

보비는 관객들의 이런 움직임을 알아챘는지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수 없는 눈의 깜박임을 통해 자신의 책을 완성한다. 인간승리가 따로 없다.

국가: 프랑스 외

감독: 줄리안 슈나벨

출연: 마티유 아말릭, 엠마누엘 자이그너

평점:

: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우쭐해진다. 이런 영화를 봤다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지친 마음이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사숙고해 고른 몇 편의 영화를 보다 중간에 그만두기를 몇 차례 반복한 경우라면 더 그렇다. ( 그 시간 정말 화나고 아깝다.)

찬란한 영상과, 빈틈없는 각본, 배우들의 노련미, 이를 통합하는 감독의 통찰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면 어깨에 날개가 달린 듯하다. 평소에 무거운 잠수종에 갇혔다가 탈피를 끝내고 푸른 하늘을 자유로 나는 한 마리 나비처럼.

최고의 순간에서 최악의 순간으로 다시 자신을 찾는 과정은 비극과 희극의 총집합체다.

아들이 자랑스러웠던 늙은 아버지의 눈물, 당신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보비의 여자는 끝내 그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스피커 폰으로 들려오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 그 말에 동조하는 보비.

그들의 말을 전해주고 듣는 셀린느의 눈물. 식물인간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여자가 벌이는 기묘하고 단순한 심리묘사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춘다.

누구나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런 때 누구는 절망으로 포기하고 또 누군가는 희망의 끈을 잡고 일어선다. 시종일관 주인공의 시선은 후자를 택하라고 남은 자들에게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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