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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파이트 클럽(1999)-나의 고통 해결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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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파이트 클럽(1999)-나의 고통 해결법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3.19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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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고독은 인간만이 가진 최고의 선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클럽이 없으면 그걸 상실하는 인간들이 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 충실해도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될 곳에 들어간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완벽한 자유를 망각하는 이런 부류는 내면이 허물어진 성채와 같다.

어디 끼어야만 숨통이 트이는 사람들.

데이빗 핀처 감독은 그런 인간들을 모아서 <파이트 클럽>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싸우는 모임이다. 말로 싸우기보다는 주먹과 발길질로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늘 상처투성이다. 남들이 보기에 저런 인간들의 속은 겉보다 더 망가져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다. 싸우고 나서야 속이 시원해진다. 묵은 고통이 사라지고 정신적 희열이 솟구친다. 싸움이 멈추면 괴롭고 시작하면 즐겁다. 세상에, 어찌 그럴 수 있지? 이런 의문은 잭(에드워드 노튼)과 테일러(브래드 피트)의 행동을 따라가 보면 쉽게 풀린다.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의 일상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한 달 일하고 한 달 월급으로 살아간다. 취미라면 신상 가구를 사들이는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일상을 버틴다. 가구가 들어찰 때마다 기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난 공허가 메아리친다.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늘 제자리를 맴도는 일상을 견디기 어렵다.

거기다 불면증 까지 덮쳤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는지 못자 본 사람들은 안다. 세상이 온통 회색이다. 아니 검정인가.

▲ 잭은 말라를 만나면서 예전의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잭에게 말라는 어떤 존재인가.
▲ 잭은 말라를 만나면서 예전의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잭에게 말라는 어떤 존재인가.

회사에 출근해서는 사장이 돌같이 보인다. 업무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이다. 무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사라졌으니 그럴 만하다.

그런데 세상은 너 잠 못 잤으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직원을 바라보는 회사와 잭은 곧 폭발할 갈등을 품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무려 6개월째 불면증에 시달리다니. 입에 총구를 물고 있는 심정이 이럴까.

병원을 찾은 잭에게 의사는 적절한 처방을 내지 못한다. 잭 같은 환자를 하도 많이 봐서인지 풀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나. 수면제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관객들이 따질 새도 없이 의사는 한마디 툭 던진다.

‘네가 고통스럽다고. 그렇다면 고환암 환자들을 보라.’

얼마나 그들이 힘든지 잭은 직접 환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간다. 거기에는 조연으로 영화를 빛내는 신스틸러 밥(미트 로프)이 거구의 몸에 맞지 않게 어린애처럼 흐느끼며 울고 있다.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젖통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치료를 위해 여성 호르몬제를 과다 투여했기 때문이다. 잭이 그의 가슴에 안겨 같이 운다. 실컷 운다. 상대보다 더 크게 운다.

그리고 나서 잭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불면증? 그런 게 있었어.

그날 이후 꿀같이 잠이 계속된다. 회사 일도 척척박사다. 그는 자신보다 열악한 상태의 환자들, 이를테면 간암 췌장암 뇌암 등 온갖 암 환자 모임에 단골로 참여한다. 가짜가 진짜 환자 흉내를 내면서 죽음을 앞둔 그들에게서 위로와 구원을 받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 나올 만하지 않은가. 우리의 사랑스런 말라( 헬레나 본 햄 카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 역시 잭처럼 가짜 환자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잭과 그녀는 서로가 가짜를 확인하고 겹치지 않게 구역을 나눈다. 뇌나 심장이나 혹은 피부 쪽으로.

그리고 나서 요일별로 따로 참석하자고 약속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말라를 만나고부터 그러니까 자신 말고 다른 짝퉁 환자가 등장하면서 그의 불면증이 도진 것이다.

젖통이 상상 이상으로 큰 밥의 가슴에 안겨 실컷 울어봤자 아무 효과없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마리화나는 싱겁다. 고도로 정제된 순정품 코카인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는 마약 환자는 아니다. 전두엽을 잘라야면 끊을 수 있다는 ‘뽕쟁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때 혜성처럼 테일러( 브래드 피트)가 등장한다.

그는 흐느껴 우는 대신 주먹질을 앞 세운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고 또 때리고 맞는다. 죽사발이 된 잭이 쓰러져 있다. 얼굴은 곤죽이 됐고 입가엔 피가 흥건하다.

그는 울거나 화내거나 퉁퉁 부은 얼굴로 씩씩거려야 맞다. 그런데 천사가 따로 없다. 그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싸울수록, 맞을수록 그는 단잠을 잔다. 잭에게 다시 불면증은 뭐지? 하는 생뚱맞은 질문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순조롭다. 자, 그렇다면 이 영화는 해피앤딩일까. 제목에 맞게 싸움꾼을 만났고 싸움으로 일상을 극복했으니 그러지 않느냐고 확인의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상상이상으로 파괴적이다. 나의 행보만을 위한 싸움은 급기야 변질에 변질을 거듭한다. 전국으로 클럽 체인점이 확대되고 군대가 조직되고 대량살상과 건물의 연쇄 붕괴가 이어진다.

잭의 불면증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사람들이 희생된다.

그러면 이들의 클럽은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잭과 타일러와 말라를 이해하면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것이 맞는 해답일까.

어쨌든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매우 신선한 충격을 준다. 죽음과도 같은 ‘나의 고통 해결법’을 일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미국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 헬레나 본 햄 카터

평점:

: 찬양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평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화가 논쟁을 만드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대단히 충족시켜 준다.

영화 시작 부문은 너무 재미있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죽음을 코앞에 둔 암 환자를 상대로 잭과 말라가 벌이는 소동은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짐승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테일러를 만나고 나서도 이런 질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후반부로 가면서 잭이 타일러인지 타일러가 잭인지 혼돈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감독의 의도가 전달될 무렵 조금 흥이 떨어지지만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그것이 뭐냐고 묻기 전에 이런 영화는 한 번 보고 나면 두고두고 화젯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집값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대화도 좋지만 이 영화를 놓고 주절거릴 때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부동산으로 인간의 내면은 단단해지지 않지만 내 고통과 타인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은 나란 존재 혹은 이웃을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자 그러면 우리도 한 번 말라처럼 여자이면서도 고환암 환자 클럽에 가입해 볼까. 아니면 파이트 클럽에 들어가 죽도록 때려보고 죽도록 맞아볼까.

그럴 필요 없다. 일상을 지키는 차분한 마음, 그것만으로도 나의 존재는 충분히 증명하고 남는다. 진정한 구원은 일상에 있기 때문이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면 잠시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그것은 거품처럼 쉽게 가라앉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말하지 말자, 절대 말하지 말자는 규칙 1, 2호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클럽 활동이 마이너들의 조잡한 리포트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한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말의 강조는 어떤 폭력도 용서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싸우기 위해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도, 회사를 협박하기 위해 사장 앞에서 자해행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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