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4월 제주녹지병원에 대해 제주도개 내린 허가취소처분이 적법하다는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이제 대법원 판단만 남은 상황으로, 항소심에서 뒤집힌 판결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 반발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측된다.
광구고등법원은 지난 18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이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이로 인한 의료계 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제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소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제주도는 ▲개설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고 ▲녹지병원이 현지점검에 응하지 않아 관계 공무원의 직무 수행을 기피 또는 방해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9년 4월 17일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 측은 제주도의 취소처분에는 위법 사항이 있으므로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정당한 사유의 존재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측에 증명책임이 있다”며 원고 측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제주도가 제시한 병원 개설허가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볼 사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병원 측이 개설허가 자체의 취소를 요구하는 관련 소송도 현재 진행 중일 뿐”이라며 “취소처분 당시의 개설허가의 효력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은 업무시작을 연기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됐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병원 측의 주장처럼 개원해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실익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관련 증거를 모두 확인해도 인정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제주녹지병원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주요 이용객으로 상정해 사업계획을 세웠고, 사업계획서에 ‘제주녹지국제병원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국인 등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대상이므로 공공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없음’이라고 명시한 점을 고려하면 개설허가 조건 때문에 영업을 시작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하지 않는 것은 개설허가에 부가된 조건에 따르기 위한 부득이한 행위”라며 “의료법 제15조 소정의 ‘정당한 사유’ 없는 진료거부에 해당해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에서 기각 판결을 받은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은 즉시 항소를 제기했고, 2심 재판부는 1심과 다르게,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행정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기각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3개월 이내 개원해 업무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녹지병원측이 진료대상자를 제한하지 않은 것으로 전제로 설립을 추진해 의료기관 개설을 위한 물적, 인적 준비를 마쳤지만 15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에서야 조건부로 허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녹지국제병원을 조건부(외국인에 한해 진료)로 개원 허가에 따른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이번 재판에서 판단하지 않았다. 병원 측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환자에게 진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관련소송에서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
항소심에서 녹지병원에 대한 판결이 뒤집히자, 시민단체에서는 판결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돈벌이 병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영리병원 설립을 정당화하는 판결로 공공의료 시계는 다시 거꾸로 가게 됐다”고 지적했고,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에서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영리병원 정당화 판결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논평했다.
또한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녹지그룹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세우겠다는 의료자본, 이를 알면서도 허가해 준 원희룡과 임기 내내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며 영리병원 설립을 묵인했던 문재인 정부와 이들 손을 들어 준 광주고법 모두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계에서도 ‘의료영리화’에 대한 단초를 줄 수 있다며 우려의 뜻을 표했다.
지난 2019년 4월 제주도가 개설 허가 취소 처분하자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생명권을 명시한 헌법적 가치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있는 녹지병원의 허가가 취소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만약 허가가 강행되었으면 의료영리화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당시 의협 회장이었던 최대집 회장은 영리병원 허가 철회를 요구하면서, 당시 제주도지사인 원희룡 지사를 방문, 항의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현재 의협에서는 이러한 전 집행부의 기조를 이어, ‘의료영리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겸대변인은 “제주 녹지병원에 대한 항소심 판결 결과는 의료영리화에 대한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원론적 입장에서 반대한다”며 “현재 협회는 관련해서 산하단체의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광주 고법 판결로 운영가능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면서 과연 대법원 판단이 어떻게 될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지역 의사들은 만약 녹지국제병원이 운영을 시작하더라도 주변 의료기관과 상생 관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다봤다.
제주시 소재 개원의는 “의료산업화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이 다시 일차의료기관을 찾거나 주변지역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없다”며 “녹지국제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하게 된다고 해도 공공의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부산이나 인천 등 의료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들이 있는데, 만약 대법원에서도 고등법원 판결이 유지돼 녹지국제병원이 개원하게 되면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생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