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심평원이 행정예고한 ‘고시’에 대해 의료계가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해당 고시에 ‘외래에서 시행 가능한 검사, 처치, 수술 등만을 위한 입원은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문구 삽입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와 대한지역병원협의회(공동회장 박양동ㆍ박원욱ㆍ박진규ㆍ신봉식ㆍ이상운ㆍ이동석ㆍ이윤호ㆍ장일태)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행정예고한 개정안과 관련해 “진료현장에 많은 문제와 혼란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는 불합리한 개정”이라며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심사투명화'를 위해 고시 개정을 본격화하고 있고, 특히 입원료 산정원칙이 담긴 요양급여 적용기준 고시를 행정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임상적ㆍ의학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입원료를 산정할 수 있으며, 외래에서 시행 가능한 검사(영상진단 포함)나 처치, 수술만을 위한 입원료 산정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의협과 지병협은 “이번 고시는 입원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고 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진료현장의 의사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혼란에 빠지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당 고시의 폐지나 합리적인 개정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의협과 지병협은 입원에 대해 지난 2009년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해당 판례를 살펴보면 입원을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낮거나 투여되는 약물이 가져오는 부작용 혹은 부수효과와 관련해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경우, 영양상태 및 섭취음식물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 약물투여ㆍ처치 등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환자의 통원이 오히려 치료에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 또는 환자의 상태가 통원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경우나 감염의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 환자가 병원 내에 체류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한 의료법 시행규칙 제1조의 4 ①은 간호ㆍ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원환자의 대상과 의사의 진료권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 의협과 지병협은 “대법원 판례와 의료법시행규칙은 입원환자의 범위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며 의사들의 진료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되는 고시는 의료규칙이 인정하는 포괄적 진료권에 어긋나는 것으로,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입원은 치료에 전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질병 또는 재해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된다면 ‘의사들의 판단에 따라’ 의료법 제3조에서 정한 의료기관에 입실해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며 “질병 치료 중 발생한 합병증이나 추가로 새로운 병변이 발견된다면 치료를 위해 입원 검사가 필요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증상은 진단되지 않은 미상의 상태에서 입원하여 검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차후 질병이 확인된다면, 이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입원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입원의 기준을 고시로 결정하는 것은 보편적 관념과도 어긋나고 의료법 시행규칙과도 배치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의협과 지병협은 “입원 후 실제 시행된 검사가 사후 외래에서만 가능한 검사로 판단돼 입원이 불인정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개정 고시안은 ‘외래에서 시행가능한 검사, 처치, 수술 등만을 위한 입원은 인정하지 아니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임상 진료는 경증과 중증의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상의학 검사는 외래에서 시행 가능하지만 검사를 받는 수진자의 상태는 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다수로, 수술을 포함해 여타의 검사나 처치들에 대해서 동일하다”며 “수진자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이므로 ‘외래에서 시행가능한 검사, 처치, 수술 등만을 위한 입원은 인정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진료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지역병원협의회는 “복지부와 심평원은 ‘공개 기준이 없을 시 진료비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들어 심사를 투명화하기 위해 고시를 개정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심평원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삭감을 일상화했다”고 밝혔다.
의협과 지병협은 “의료기관 입장에서 개정 고시로 인해 조정률이 높은 의료기관에 해당된다면 향후 시행될 분석(경향)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어, 진료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개정고시안은 단순해보이지만, 이 단순함으로 경제적 수익을 얻는 특정 집단이 발생한다면 개정의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심사 투명화를 위한 입원에 대한 고시 개정은 입원을 정의하는 법적 근거로 이용될 것이고, 이익을 내야 하는 민간 실손보험사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민간 보험사에서 이 고시를 근거로 치료가 종결돼도 환자들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급 후에도 의료기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쟁송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개정안은 분명히 수진자들을 지금보다 불편하게 만들 것이고, 수진자들이 얻어야 하는 비용은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환자들의 불편함을 초래하고 특정집단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고시 개정을 심평원이 주도했다면, 양심을 져버린 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고, 특정집단과의 유착이라는 오명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며 “의료계는 작금의 사태에 좌시하지 않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