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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판도라의 상자, 외면 말고 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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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판도라의 상자, 외면 말고 맞서야
  • 의약뉴스 송재훈 기자
  • 승인 2018.11.05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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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2일, 한국보건행정학회 30주년 기념 추계학술대회 중 ‘의약품 HTA 도전과 과제’ 세션의 좌장을 맡은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정형선 교수가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이의경 교수가 발제한 ‘국가별 신약가치비교’ 연구에 대해 한 줄로 요약한 평가다.

이의경 교수가 밝힌 연구의 목적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결과로 도출된 수치들을 두고 해석에 따라 수많은 논란을 유발할 것이란 의미로, 약가 수준이 높다면 높다는 이유로, 낮으면 낮다는 이유로 정부를 지탄하는 아이러니를 빗대 ‘판도라의 상자’라고 꼬집은 것이다.

새롭게 발표된 연구는 2014년 이후 도입된 여러 가지 접근성 강화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신약 약가 수준이 이전보다 10%p 가량 상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약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약가 대우=접근성 향상’이라는 프레임을 완성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노바티스 김성주 이사는 이 교수의 발표 이후 접근성 강화 정책이 실제 신약의 등재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이 원하던 원치 않았던 간에 한 자리에서 두 발제가 이어진 탓에 ‘약가 수준 상승’과 ‘등재율 상승’이 하나로 묶여, 은연중에 청중들에게 두 가지 변화 모두 ‘긍정적’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뿐만 아니라 접근성 향상 정책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국내 신약 약가 수준이 외국보다 낮다는 측면에서, 이 연구결과는 정부의 약가제도에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논거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외국 대비 국내 약가수준의 상승’이라는 결과로 인해 정부가 시민단체의 지탄을 받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두고 ‘정부가 협상력을 잃고 제약사에 끌려다닌 결과’라는 질타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에서는 그간 위험분담계약제 등 접근성 강화방안이 약의 실제 가격을 모호하게 만들어 정부의 협상력이 악화돼 약가 상승과 접근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외국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약가수준이 접근성 강화정책으로 인해 이전보다 10%p 가량 상승했다는 이 교수의 연구 결과는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일치한다.

뿐만 아니다. 외국에서 약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이 교수의 연구 결과를 입맛에 맞게 활용하면서 결국 우리나라의 접근성 악화라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약가 수준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결과가 통상 마찰을 불러올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약가 비교라는 한계가 적지 않은 연구를 진행해, 괜스레 이러한 부담을 초래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타이기도 하다. 

지난 2013년에도 이의경 교수는 우리나라에 등재된 신약의 약가 수준이 OECD 등 주요 30여개 국가들과 비교해 45% 수준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최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교수의 연구를 두고 정당성을 꼬집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교수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핵심인 결과보다 연구의 가치와 필요성, 해외의 연구 사례, 수집된 해외 약가의 신뢰도 제고 방법 등 서론을 소개하는데 10배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히고 도출된 수치를 과도하게 활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수치가 아니라 접근성 강화정책 도입 이후 나타난 변화의 경향성을 이해하는데 활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교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의 연구는 이미 결과 발표 이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초가 되는 해외 약가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과 연구의 한계는 사라진 채 수치들만 부각될 것이란 우려들이 쏟아진 것.

틀림없는 지적이다. 국가간 약가 비교는 한계가 분명한 연구이고, 도출된 결과값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구다. 심지어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입장에 따라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약가비교 연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비단 약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오히려 한계가 있다면, 다양한 연구를 통해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하고 보다 객관적인 답안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격이 가진 속성 탓에 어떠한 연구로도 신뢰할 값을 찾을 수 없어 연구 자체가 무의미하다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방법론에 따른 결과의 편차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약가비교 연구의 가치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루는 것이 옳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 교수가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약가는 여전히 외국대비 45%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터다.

약가비교 연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지난 국정감사에서 연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모쪼록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약가비교가 지닌 한계는 분명하게 드러내고, 약가의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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